<맛집>일본 도쿄 '三朝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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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졸업하고 몇년후 우연히 지나친 학교.학창시절 자주 가던 분식점이나 카페가 아직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그 반가움을 느끼기란 서울에서 얼마나 힘든 것인가.
일본 사학의 명문인 와세다대 앞 네거리 모퉁이엔.산초안(三朝庵)'이란 작은 소바집이 있다.그냥 수수한 대중식당 같지만 이곳에서 파는 것은 소바(메밀국수류)나 우동만이 아니다.와세다대설립 때부터의 산증인.말 그대로.추억'을 곁들여 파는 곳이다.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안주인 가토 미네코(加藤峯子.62)가 전형적인 일본인의 상냥한 미소와 함께 반긴다.전통있는 일본의 음식점을 찾아왔다고 하자 조금은 수다스러운 가토는 한쪽 벽으로 기자의 손을 이끌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유리장으로 만든 그 벽은 이곳 단골손님들의 친필서한이나 사진들로 가득하다.
“와세다대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大외重信)나 이 대학 최초의 외국인 유학생인 한국인도 우리 단골이었대요.” 사실 이 식당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에도(江戶)시대 중반인 17세기말이었다고.점원이던 가토씨 남편의 4대조 가토 아사지로(加藤朝治朗)씨가 이 식당을 이어받은 것만 1백20년이 넘었다.그때부터 현재의 옥호로 장사해온 것이라고.
처음엔 네거리 맞은편에 있는 아나하치방진자(穴八幡神社)를 찾는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이었다.그래서 와세다대 졸업생뿐만 아니라 참배객으로 왔던 젊은 손님들중에 나이들어 자식이나손자와 함께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고.
“그분들을 뵐 때마다 이 식당을 잇고 있는 보람을 느껴요.”하지만 이 집이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한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오래 팔았기 때문만은 아니다.“소바맛을 그대로 잇는것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바뀔 때마다 대중적인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내려고 애쓰고 있어요.옛 것과 새 것을 끊 임없이 조화시켜야만 손님들이 계속 찾으실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카레남방.가츠돈 소바등을 도쿄에서 맨처음 시작했다는 것이 이집안주인의 말.외국에서 카레라이스나 돈까스등이 들어와 레스토랑에서 고급 음식으로 파는 것을 소바나 우동과 조화시켜 만들어낸 메뉴란다.그런식으로 메뉴를 개발하다 보 니 만들 수 있는 소바.우동.덮밥류가 1백여종이라고.가격은 4백50~1천3백엔(약 3천3백~9천5백원).
“회사원과 만화가인 아들 둘이 있는데 아직 이 식당을 맡으려고 하질 않아요.하긴 나도 마흔이 넘어서야 이 일을 하는 의미를 알게 됐으니….”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아직도 가업계승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가토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일본인의 힘'을 보는 것 같았다.
[도쿄=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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