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民心으로 돌아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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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 노동법관련 파업사태를 설명하는 핵심은.민심이반(民心離反)'네글자라고 생각된다.날치기도 문제고 개정법의 내용도 문제지만 사태가 이렇게 커지고 깊어진 것은 현정부를 떠나고 반대하는민심이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시위와 항의가 흔히 말하는 넥타이부대는 물론 종교인.문인.교수.교사,심지어 가정주부에까지삽시간에 확산된 것을 보거나,시위대의 구호가 노동법 반대에서 너무나 손쉽게 정권퇴진과 대통령에 관한 구호로 넘어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과거에도 날치기는 많았지만 날치기규탄여론이 바로 정권퇴진의 대중구호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결국 문제는 정부가 민심을 몰랐다는 것이다.민심을 알았던들 그런 날치기나 그 후의 그런 기자회견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권(與圈)은 왜 그토록 민심을 몰랐을까.
특히 탁월한 대세(大勢)감각으로.감(感)의 정치가'로까지 불리는 YS가 왜 감을 못 잡았을까.
항간에서는 흔히 참모들이 보좌를 잘못했다거나 듣기 좋은 정보만 보고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하지만 최근의 정국흐름을 들여다보면 오히려.과잉자신감'이 여권 핵심부의 감각을 무디게 했다는분석이 유력한 것같다.
그동안 있었던 몇가지 사실만 짚어보아도 여권이 자신감을 가질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가령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신한국당후보가 야당의 두 金씨를 늘 앞질렀다.야당의 구상대로 DJ와 JP가 손을 잡는 DJP연합이 이뤄진다 해도 여 권후보의 우세는 변함이 없었다.심지어 DJP연합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최각규(崔珏圭)강원지사등의 탈당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그쪽에 승산이 있다고 보인다면 그런 내부이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동법.안기부법도 여권에 유리한 형세였다.가장 문제가 된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 여권보다 자민련에 더 완강한 반대의사가 많았고 안기부법 개정도 자민련에 찬성기류가 많았다.이쯤되니 두 개정안의 국회통과도 낙관했을 것이다.다만 崔지사등 의 탈당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해 나중에 자민련이 반대로 돌아서는 차질이빚어졌지만 전반적인 형세는 여전히 여당이 좋았다.또 이 두 개정안으로 보수층의 표를 확실히 잡고 이를 반대하는 국민회의와 보수층을.학실히'분리할 수 있다는 계 산도 충분히 했음직하다.
이런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런 날치기와 그런 연두기자회견이 나왔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여권이 보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정치권에서 이기는 것이 곧.국민권'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정치권 자체가 이미 민심을 많이 떠나 있고,과거와는 달리 우리사회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의외로 작아졌다.아직도 정치권의 싸움은 3金싸움이지만 3金싸움의 승자가 곧 우리사회 전체의 패자(覇者)가 된다는 보장도 사라지는 추세다.신한국당 후보중에서 YS의 손때 묻은 민주계 인사보다 YS와는 다른 사람인 영입파에대한 지지가 높고,야당에서도 제3 의 후보가 나와야 게임이 된다는 여론조사가 이런 사실을 잘 말해준다.
결과적으로 여권은 여론조사에서,자민련 탈당에서,날치기에서 연전연승을 거뒀지만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파업과 국민항의와 민심이반이었다.
정치권 승부에만 집착하지 않고 정치권에서의 승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던들 이런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누구보다 민심에바탕한 정치를 해왔고 그런 민심정치로 집권한 YS로서는 임기말에 자기가 바로 그 민심이반의 대상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늦게나마 상황을 깨닫고 전격적인 영수회담으로 돌파구를 여는 솜씨는 역시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민심으로 돌아가는것이다.민심으로 가서 거기에 합치는 것이다.여권은 노동법에 대해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면서 홍보한다고 하지만 홍보라는 것은 민심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기자는 발상이다.그러나 민심이란 누가 끌어당긴다고 끌려오고 끌려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다른 누구의 마음도 자기에게 와서 합치라고 요구하는 것이 민심이다.국민은 이미 상투 끝에 올라앉아 있다고 생각해야 옳다.민심을 끌어당기려고 하지 말고 민심으로 찾아가야 한다.
이 간단한 해법(解法)을 두고도 연일 무슨 회의,무슨 회의 하며 묘수 찾기에 골몰하는 것은 지름길을 두고 굽이굽이 험한 길을 돌아가자는 것밖에 안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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