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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발탁은 모험이지만 내각 밖에 두는 것보단 得”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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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11면

“미국 정치인들은 머릿속에 아직도 ‘Korea, Inc.(대한민국주식회사)’ 이미지를 갖고 있다. 버락 오바마 시대를 맞이해 1997년 환란 이후 한국이 얼마나 개방경제 체제로 바뀌었는지 설득해야 한다.”

MB 첫 외교안보수석 김병국 교수가 본 오바마 시대

김병국(49) 고려대 교수는 정권교체기를 맞이한 대미 외교의 과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4개월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일했다. 당시 한·미, 한·중 정상회담을 각각 준비하고 주한미군 전력 동결, 한·미 전략동맹 구상 같은 주요 사안들을 다루었다. 하버드대 학부(경제학)·대학원(정치학)을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국가와 경제성장’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통답게, 하버드대 교수인 조셉 나이 전 국무부 차관보 등 하버드 인맥과의 네트워크가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

21일 저녁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는 매 질문에 꼼꼼한 답변과 정확한 설명을 곁들였다. 건강진단을 하느라 수면내시경 검사를 하고 왔다는데 피곤한 기색은 별로 없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버락 오바마는 미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가.
“오바마가 변화를 가져온다기보다 부시가 남긴 경제·안보 유산의 결과라는 측면이 크다. 그렇다고 오바마의 리더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상충하는 다양한 가치와 현상들을 하나의 담론에 담아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변화와 통합을 기치로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시절에 깊어진 이념적 양극화를 치유하겠다고 말한다. 오바마는 사회 영역에서 리버럴(liberal), 경제 영역에서 중도(central), 국제 영역에서 다자주의를 표방한다. 그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한국적 시선을 버려야 한다. 색맹(色盲)의 눈으로 그를 봐야 한다. 그는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 키운 정치인이다. 2000년 일리노이주 하원의원 선거 때는 지역구 유권자의 65%가 흑인이었지만 오바마는 대패했다. 하지만 4년 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선 백인 유권자가 80%인데 압승을 거뒀다. 오바마가 던지는 메시지들은 백인 중산층의 가치관과 일치한다.”

-오바마의 활동과 미 상원에서의 성향은.
“오바마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시절 인권 분야에 주력했다. 전 국민 건강보험 보장과 여성·소수자 권리 확대, 줄기세포 연구 등을 지지했다. 사회 영역에선 ‘좌파적’ 성격이 강하다. 연방 상원의원 시절 투표 성향을 보면 1차 연도에 100명의 의원 중 16번째의 좌파 성향을 보였다. 2차 연도엔 10위, 3차 연도엔 1위였다. 오바마는 동북부 지역 리버럴리즘의 주류이며 그것을 심화시켰다. 동북부 리버럴은 미 사회의 주류 중 주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이슈에선 중도를 표명한다.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서는 초당적 정국 운영을 위한 컨센서스 구축을 가장 강조했다.”

-오바마는 정적이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발탁하고,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포용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권교체기엔 환희의 목소리만 들리지만 오바마는 침묵의 소리도 들을 것이다. 특히 공화당 지지층의 불만과 소외감을 달래야 한다. 당내 경선에서 지지기반을 과시한 힐러리는 대단히 독립적인 국무장관이 될 수 있다. 오바마로선 상당한 모험이지만 힐러리를 내각 밖에 놔두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득이 된다. 국민에게 위기 극복을 위한 포용·통합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힐러리 역시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국무장관 직이 상원의원 직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내 경선 상대였던 박근혜 의원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는 없나.
“우리 정치권이 정당의 경계를 넘어 국익을 도모하는 협력체제를 마련하는 게 국민의 염원일 것이다. 여당·야당이든 주류·비주류로 나뉘어 갈등을 빚기보다 상생의 모델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오바마의 진보 성향을 한반도 정책에 적용한다면.
“오바마에게 진보라는 수식어를 붙일 때 ‘progressive’보다 ‘liberal’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당하다. 한국에선 보수·진보를 나누는 기준이 남북 관계와 통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의 진보는 인권을 강조한다. 오바마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안보 영역에선 가치보다 비용의 문제가 더 클 것이다. 경제위기 시대에 재원 확보가 중요한 만큼 한국의 비용 분담을 적극 요청할 것이다.”

-오바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자동차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가 보호무역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내각·백악관 요직의 하마평에 오르는 사람들은 세계화와 개방을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만 해도 ‘신민주연대’에 속해 보호무역보다 타국의 시장 개방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오바마가 최근 ‘내년 9월 이후’ FTA 비준을 희망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당장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자동차 ‘빅3’에 대해 과감하고 빠른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자동차 문제가 FTA 비준의 큰 장애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상당수 핵심 참모들은 한·미 FTA 조기 비준을 주장한다. 우리는 FTA 비준 이후 한국 자동차업체들이 미국에 더 많은 공장을 지어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 밝힌 Tough & Direct 정책은 어떻게 적용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할 수 없다는 뜻에서 Tough라는 단어를 썼을 것이다. Direct는 6자회담과 함께 북·미 양자협상을 배제하지 않는 취지로 풀이된다. 오바마 취임 뒤 ‘100일 이내 특사 파견설’이 나오는데 오바마에게 급선무는 금융위기 극복이다. 초당적 협력이 아쉬운데 임기 초반에 여야 갈등을 일으킬 새로운 대북 정책을 채택할 것 같지 않다.“

-한나라당 의원대표단이 다음 달 1일 미국을 방문한다. 한국 정부는 대(對)오바마 채널을 어디까지 가동하고 있나.
“오바마 취임 6개월 안에 이뤄질 한·미 정상회담이 가장 중요하다.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 2001년 김대중·부시 정상회담이 실패한 사례를 답습해선 안 된다.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은 시기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준비하고 정상끼리 얼마나 스킨십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오바마의 첫 내각에 의원·주지사들이 많이 입각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회의원들이 그들과의 네트워크를 다져야 한다.”

-향후 한·미 관계에서 엇박자를 낼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역대 정권에서 긴장과 갈등은 늘 반복됐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을 체결할 때 얼마나 갈등이 많았나. 주한미군 감축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어느 정권에서나 국익에 따라 일방적으로 정책을 바꿀 수 있다. 최근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할 때도 일본 측 반대를 묵살하지 않았나. 미국의 정책 변화들을 미리 예상하고 우리가 양국 국익에 도움 되는 전략적 대안들을 먼저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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