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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伊 이기고 일본에 진 건 보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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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김철용(50) 감독은 별명이 '독사'다. 그의 밑에서 10년 가까이 공을 만진 한 노장선수는 "그래도 요즘엔 선생님이 많이 순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외유(外柔)'일 뿐이다. 그는 여전히 '내강(內剛)'이다. 러시아와 이탈리아를 연파하면서 이룬 3연속 올림픽 출전을 김감독은 "서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는 아테네 하늘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것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다음날(18일) 그는 곧바로 LG정유 훈련장을 찾았다. 부상에서 회복 중인 '차세대 거포' 김민지(19)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3연속 올림픽행의 뒤에는 그의 이런 정성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제 그만 뛰겠다"며 태극마크를 거부한 노장 구민정(31).강혜미(30).장소연(30.이상 현대건설)을 설득하려고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두어차례 집에도 찾아갔다. 강혜미는 관리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베란다 밖에 서있던 김감독을 발견했다. "그래도 12년간 선생님 밑에서 운동했는데…"라며 마음을 돌렸다.

김감독이 방문했을 때 장소연은 러닝머신에서 뛰고 있었다. "싫어도 해야 될 때가 있다"는 말에 돌아섰다. 구민정은 이들에 앞서 어머니의 설득으로 대표팀에 돌아왔다.

세 노장은 아테네행 일등공신이 됐다. 게다가 대회 내내 이들이 김감독을 챙겼다. 김감독은 "대표 감독 9년 동안 선수들이 나를 챙겨준 건 처음"이라고 했다. 노장들의 솔선수범은 역시 후배들에게 힘이 됐다.

태국과 대만을 잡은 뒤 러시아전을 앞두고 김감독은 "즐겁게 하자"고 했다. 그가 구상한 카드는 전위(前位)에 공격수 세명을 세우고 세터 강혜미.김사니(도로공사)를 번갈아 후위에 놓는 것이었다. 장신인 상대를 잡기 위한 묘수였다. 러시아는 물론 이탈리아전까지 이 수(手)가 적중했다.

4연승 뒤 일본에 0-3으로 완패했다. 경기 전 "다 이겨도 한.일전에서 지면 소용없다"고 했던 김감독은 속으로 웃었다고 한다. 러시아.이탈리아 연파로 우쭐해진 선수들이 패배라는 보약을 먹게 됐기 때문이었다. "자신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갖게 된 건 본선을 위해 잘된 일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동안 수비 위주의 배구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오는 30일 소집하는 대표팀에 본격적인 공격 훈련을 시키려 한다. 점프서브는 물론 구민정.정대영(현대건설) 등 주공격수에게는 후위공격을 연마시킬 생각이다. 그는 "올림픽까지 석달 남았다. 훈련이 힘들면 경기는 쉬워진다"며 독사의 본색을 드러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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