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눈가리고 아웅 투기단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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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가령 정부가 합동단속반을 구성해 유흥업소 심야영업을 대대적으로 단속한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한다고 치자.실제 단속에 들어가면 바보가 아닌 이상 버젓이 심야영업을 할 강심장의 유흥업소 업주는 없을 것이다.
건설교통부가 15,16일 이틀간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서울의강남.목동 등지와 분당.일산등 신도시를 대상으로 벌인 투기단속도 이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건교부는 단속 하루전인 14일 서울및 신도시지역 부동산중개업소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통해 투기단속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일부 부동산중개업소가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단속에 들어간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여 기에 단속 사실을 언론에 보도하면 집값 상승을 어느정도 잠재울 수 있다는소박한 계산도 깔려있는 것같다.
기자는 15일 건교부 단속반을 따라 동행취재에 나섰다.이날 분당신도시에 도착한 단속반을 맞은 것은 셔터가 내려진 부동산중개업소의 육중한 철문이었다.
일부 문을 연 업소를 찾아“다른 업소는 문을 닫았는데 왜 영업하느냐”고 물었다.
이 업소 주인은“정상적인 거래를 했을 뿐 투기를 부추긴 사실이 없는데 영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문을 닫은 업소들은 아마도 떳떳지 못한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단속 사실도 언론에 숨긴채 현장을 덮쳐야 효과가 있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잡으러 간다고 알려주면 도망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단속반이 분당동.내정동의 현장조사를 마치고 초림동으로 이동했을 때는 어디서 연락을 받았는지 황급히 문을 닫고 빠져나가는 부동산업자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들은 단속반이 다음 장소인 정자동으로 이동하자 다시 문을 열고 영업하는 여유도 보여줬다.3명의 단속반원으로는.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었다.
이에 단속반원중 한 사람은“적은 인원으로 분당 전지역을 단속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문을 닫은 업소 명단을 모두 적어국세청에 통보해 세무조사하도록 권유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투기단속령도 근본적 처방보다는 일시적으로 고통을 멎게 하는 진통제를 쓰려는 것처럼 보인다.
해마다 부동산 가격이 들먹일 때마다 사전에 대책을 세우지 못한채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정부의 부동산 투기단속.그러나 이것마저도 전시행정에 파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없는 서민들의 한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결국 피해자는 시민들,특히작은 집이라도 마련하려는 서민들이다.
김현승 경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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