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무위당의 집에는 서울 손님도 들끓었다. 시인 김지하, 소설가 김성동.송기원, '아침이슬'의 김민기, '우상과 이성'의 리영희 등이 그들이다. 1988년 서울 인사동 시화전 때는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씨가 앞다퉈 작품을 사들였다던가? 신간 '좁쌀 한 알'(도솔)은 무위당 10주기를 맞춰 나온 서화집을 겸한 일화집이다.
너무 늦은 책이다. 그가 70년대 민주화투쟁의 정신적 지주라서만은 아니다. 본디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동학까지 손을 뻗었던 독립적인 재야 사상가이자, NGO운동의 싹을 만든 주인공이다. 이런 뒤늦은 조명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유언이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인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시인 김지하가 발문을 쓴 이 책은 각별하게 읽힌다. 21일 원주 토지문학관에서의 포럼, 22일의 기념전(원주시립박물관)등과 함께 그의 삶을 기리는 기폭제가 이 책이기 때문이다. 이웃들로부터 높이 칭송받았던 사람,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메카인 '원주 캠프'를 일궈냈던 재야 지도자의 일상이 '오버하지 않고' 담겨있다. 무엇보다 범접 못할 위인으로 치켜세우지 않고 친근한 이웃 아저씨로 설정한 기획부터 설득력있다.
젊은 시절의 무위당은 국회의원 출마를 했으나 3.15부정선거로 낙선했다. 이후 중립화 통일론 개진으로 3년 옥살이를 하면서 재야운동에 뛰어든다. '숨은 지도자'의 길로 돌아선 것이다. 중앙(서울)을 곁눈질하지않고 지학순 주교와 함께 손을 잡고 지역 공동체 운동을 전개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
김지하 말대로 한살림 운동(유기농 판매) 등 생명운동.생활운동으로 전환하며 동학과 서학의 결합을 시도한 80년대 전후의 활동 역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자기 아호를 '좁쌀 한 알'(一粟子)로 바꾸며 자신을 한없이 낮춘 것도 이때다. 유홍준 교수는 군고구마 장수의 서툰 글씨를 이 시대 글씨의 이상으로 설정했던 무위당의 글씨에 대한 애정어린 평가도 내리고 있다. "우리 시대 마지막 문인화가가 보여준 일격(逸格)의 세계"라는 것이다.
조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