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45.동원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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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무실(思務室)'.
서울양재동에 위치한 동원그룹 사옥의 각 사무실 입구에는 이처럼 이상한 팻말이 하나씩 걸려있다.무작정 일할 것이 아니라(事務室),생각하면서 일하라는(思務室) 것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유명 강사를 초빙해 그룹 임직원들이 강의를 듣는 목요세미나가 20년이상 계속돼 1천회를 넘어섰고,회장 자신이 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책을 읽게 하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원그룹 김재철(金在哲.61)회장의 경영철학을 상징적으로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사업이란 눈에 보이는 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용(信用)이 생명이다.” 해외에서.J C Kim'으로 불리는 金회장의 신용도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다.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물론 정해진 일정보다 앞당겨 해결하는 경우도 적지않아“돈을 댈테니 큰 프로젝트를 구상하라”는 제안이 잇따른다고 한다.
金회장은 또 직원들을 대할 때마다“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빠르게 읽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며 변화에의 적응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강조한다.그의 경영관은 선장 시절 배가위기상황에 부닥칠 때마다“상황은 우리를 기다려주 지 않는다”며위기극복을 위한 빠른 대응을 체질화한데서 비롯됐다.
그는 또 직원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동원그룹 사옥 18층의 회장실 문은 金회장이 있을 때면 항상 열어둔다.신입사원이라도 용무가 있거나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와이셔츠바람으로 들어가 회장과 자연스레 만날수 있다 고 한다.
金회장의 그룹 경영방침은“제일 큰 회사보다는 제일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말로 대표된다.제일 좋다는 의미는 1,2,3차산업별로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갖는 대표적인 기업을 하나씩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뜻한다..식품'과.정보통신'. 금융'등이 그것이다. 식품분야는 원양어업에서 종합식품업체로 탈바꿈한 동원산업이 있다.금융쪽에서는 82년 인수한 한신증권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강화해가고 있다.95년 광통신업체 성미전자를 인수한데 이어 지난해 7월 계열사인 해피텔레콤이 수도권 무선호출사업 자로선정됨으로써 정보통신분야에도 기반을 마련했다.
동원그룹의 모태는 69년 설립된 동원산업.참치잡이 원양어선 한척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하면서 동쪽으로 멀리 나간다는 뜻에서 회사이름을.동원(東遠)'이라 지었다.
金회장은 전남 강진농고 3학년때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역설하는 담임선생의 이야기에 감동받아 진학을 준비중이던 서울농대를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지원하면서 바다와 인연을 맺게 됐다.졸업이후 원양어선의 항해사.선장등으로 7년여 바다 생활을 한 뒤 창업하게 된다.
金회장이 당시의 경험을 살려 쓴.남태평양에서'.바다의 보고'등의 글은 기업체 오너의 글로는 유일하게 현재 초등.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다.
올해로 창업 28년째인 동원은 13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순위 46위(95년기준),매출액 1조2천억원대로 규모가 커졌지만 96년 4월에야.그룹'으로 공식 출범했다.
그동안 계열사 수도 적고 중견기업으로서 내실을 다지겠다는 뜻에서 그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전자.정보통신등 신규사업 진출이 늘어나면서 계열사간 이미지통합과 시너지효과가 필요해져 그룹으로 출범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룹 출범 이후에는 세계를 겨냥한 공격적인 경영을 내세워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원의 이같은.급성장'에 대해 金회장 본인은 정작“우리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결코 빠른 성장이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내보인다.
동원그룹은 최근의 계열사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업 경영원칙은계열사별 자율.책임경영을 고수하고 있다.그룹의 3개 주력분야인식품.증권.정보통신간의 임직원 인사교류도 거의 없고 사무실도 각각 떨어져 있다.
그룹 기조실도 없다.그룹 업무는 동원산업 경영관리실에서 사전기획보다는 사후관리 위주로 처리할 뿐이다.
그룹 차원의 신입사원 공채도 88년부터 시작됐다.주요 경영진가운데 외부영입인사가 많다보니 사내에 이렇다할 인맥도 없다.유능한 인재들을 영입,최단시간내의 경쟁력을 높이는.접목경영'이 중시될 뿐이다.
***사장단회의 세미나 방불 동원그룹 계열사에는 5년이상 재직하고 있는 사장이 수두룩할 정도로 장수 임원이 많다..한번 신임하면 믿고 맡긴다'는 金회장의 방침 때문이다.그룹에서는 계열사별 책임경영제도가 이같은 풍토에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동원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분기마다 열리는 계열사 사장단회의.이 회의에서는 회장의 획일적인 지시 대신 세미나를 방불케하는 열띤 토론을 통해 그룹경영 방침과 목표가 정해진다고 한다.나머지 일상 업무는 金회장이 주재하는 동원산업 임원회의에서 대부분 결정된다.
金회장은 동원산업만 직접 챙기고 금융과 정보통신관련 업무는 필요할 때마다 계열사 사장을 통해 보고받는 것으로 대신한다.그러나 가끔씩 계열사를 직접 방문해 애로사항과 현안에 관한 설명을 듣기도 한다.
오동빈(吳東彬)동원산업 사장은 金회장의 부산수산대 1년 후배인데다 오랫동안 金회장을 보좌해오며 그룹내 대소사를 꿰뚫고 있어 그룹내 2인자로 꼽힌다.
수산청에 근무하다 78년 동원산업에 입사,89년부터 사장직을맡고 있다.합리적인 성품으로 원양수산업체였던 동원산업을 종합식품업체로 변신시키는데 구심점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장규진씨 금융분야 총괄 장규진(張奎鎭)동원증권 사장은 그룹내 금융분야를 총괄하고 있다.그는 20여년동안 재무부공무원 생활을 하다 76년 은행감독원 부원장보에 이어 한국은행감사,서울투금 감사등을 지낸뒤 91년부터 동원증권 사장으로 그룹에 합류했다.관. 금융계의 넓은 인맥을 활용,그룹의 대외업무도 상당부분 맡고 있다.
조직의 조화를 중시하는 인화형 경영인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며94~96년 3년연속 증권감독원으로부터 우수 증권사로 선정되는등 경영수완도 인정받고 있다.
정보통신분야를 총지휘하는 유태로(兪台老)성미전자 사장은 외부영입파의 대표주자.체신부 3급 공무원 생활을 끝으로 업계에 투신,금성전기등을 거쳐 90년부터 성미전자 사장을 맡고 있다.95년 성미전자가 동원에 인수됐지만 사장직을 그대 로 유지하고 있다.통신공학과 출신답게 전문성을 갖춘데다 꼼꼼하고 자기 주장도 뚜렷한 성격이다.
김영록(金泳祿)동원정밀 사장은 그룹내 모기업인 동원산업 출신.관리형 경영인으로 대인관계가 부드럽다.
허경(許炅)동원투자신탁운용 사장과 조승현(曺承顯)동원창업투자사장은 동원증권 출신으로 그룹내 금융인맥을 대표하고 있다.
전북이동통신 사장 출신인 송기출(宋基出)해피텔레콤 사장과 MBC PD출신인 김동성(金東聖)에스미디컴 사장은 신규사업 추진을 위해 외부에서 영입된 경영인들.
金회장의 2세(2남2녀)들은 장남인 남구(楠玖.36)씨만 동원증권 전산담당 이사로 재직하는 것이 유일하다.
동원그룹은 주력업종이 식품등 비제조업 분야라는 영역을 넓혀 .21세기 생활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을 비전으로.세계를 향해 뛴다'는 목표를 세워 놓았다.동원그룹이 이를 위해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선정한 분야는 첨단 정보통신사업과 도매 물류사업.선장출신인 金회장이 조타수로 자리잡은 동원호가 이질적인 업종들을 어떻게 조화시켜 세계적 기업으로의 도약이라는 목표를 달성할지 주목된다.

<홍병기 기자><다음은 태광산업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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