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시대>2.달라지는 美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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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살림 하면 똑 소리 나는 아내,성실.복종 빼면.속 없는 만두'라는 직장인,.침묵은 금이다'가 평소 생활신조인 남자친구,“차몰며 언제 집 사느냐”며 조금만 참자를 되뇌는 부부….
불과 몇년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귀감이 될만한 미덕을 지녔다며 찬사를 받았던 사람들의 모습이다.그러나 이젠 왠지 구닥다리 냄새가 좀 나고 앞뒤가 막힌 이들로 비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편보다 수입이 훨씬 많아요.집안 일엔 좀 소홀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도와주니 견딜만하고요.4~5년마다 아파트 평수늘려갈 수 있고 지난번 휴가땐 동남아여행도 다녀왔으니 능력있는주부 아닌가요.”(김은영.여.42.보험설계사) “지각 안하고 상관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직원이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입사년차도 절대적이지 못하죠.자신이 가진 개성과 창의성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중요할 따름입니다.
”(김원태.33.아시아나 인력개발팀 대리) 사는 방식이 변하고있다.따라서 미덕도 변한다.전에는 저것이 좋았는데 지금은 이것이 좋다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에 미덕의 변화를 가장 거세게 몰고 온 요인중 하나는 기업의 인사방식 변화.신입사원 모집에서부터 중견사원 승진에 이르기까지 연공서열과 근면,조직에 대한 복종심등 과거의 기준만으로는 합격과 승진의 영예를 안기에 역부족이 다.창의력을바탕으로 한 소신과 능력을 우선시하는 풍토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불과 입사 12년차인 뉴코아그룹의 강신호(姜信浩.42)부장이 그룹의 계열사인 뉴타운산업 대표이사로 발탁되고 동양화재의입사 5년차 배승일(裵勝一.30)대리가 관리능력을 인정받아 지점장으로 승진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
젊은 여성들마전 M그룹 면접시험장에는 새로운 세태를 단적으로보여주는 일이 있었다.면접관이 대학원졸업예정인 여자응시자 2명에게“상사가 커피를 타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란 질문을 한 것.그러자 한 응시자는“타다 드리겠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응시자는“커피를 타러 입사한 것이 아니다”고 답했다.결과는 커피를타지 않겠다고 대답한 응시자가 당당히 합격했다.
현모양처와 젊은 여성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남성형의 기준 역시많이 변했다.
우리사회에서 현모양처라면 바깥일 하는 남편 뒷바라지에 부족함이 없고 자녀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는 것이 주요 임무.하지만 최근 명예퇴직 바람과 함께.아버지 신드롬'이 등장하면서 아내도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
따라서 집안일에 다소 소홀하더라도 직장을 다니거나 부업을 가진 여성,그리고 집안에 있으면서도 재테크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여성들이 새로운 현모양처로 부상하고 있는 것.
신세대 여성들에게는 과묵하면서 점잖은 이른바 과거 남자답다는미덕을 지닌 남성들은 더이상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대신 얼굴은수려하지 않지만 끊임없는 재치로 자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유머감각을 지닌 남자가 인기.
이밖에 생활속에 새로운 변화의 추세는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한다는 것.지난달 제일기획이 전국 소비자 6천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중 43%(2천5백80명)가 내집마련보다승용차구입이 더 필요하다고 대답하고 있을 정도 다.
이러한 미덕의 변화에 대해 이화여대 김정선(金正善.사회학과)교수는“최근 국제경쟁력의 중요성 증가,서구화,편리 지향성등 현상이 보편화되고 젊은이들 중심으로 전통적.권위적인 문화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부분적으로 미덕의 역 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金교수는“하지만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한다든지,돈 잘 버는 주부가 유능하다든지 하는 가치가 일반화되는 것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개인 스스로의 가치판단 없이 이런 현상을 무분별하게 모방하거나 휩쓸려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것”이라고 조언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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