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고 있는 '아파트형' 비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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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식이면 으레 아이들 가슴 한 켠에 이름표와 함께 하얀 손수건을 매달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이름표는 자신을 알리는 상징물이고, 손수건은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이의 코를 닦아주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은 옷소매는 콧물을 닦아내느라 만질만질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풍경은 흔치 않다. 비염의 양상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잠실 함소아한의원의 김정현 원장은 “한방에서 보는 비염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풍한(風寒)에 의한 것과 조열(燥熱)에 의한 것으로, 다시 말해 찬바람 등 찬 기운 때문에 생기는 비염과 건조하고 더운 기운이 과해서 생기는 비염은 그 원인과 증상이 다르다.”고 설명하면서 최근 조열(燥熱)에 의한 비염증상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콧물 흐르지 않는 비염이 많아진 이유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이나 초가집은 구조적으로 외풍이 세서 한 겨울이 되면 집 안에도 찬바람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실내에서도 두꺼운 이불과 옷을 입고 지내야 했다. 아이들은 겨울에도 늘 밖에 나가 뛰어 놀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찬 공기를 자주 접했다. 자연스레 찬 기운에 의해 감기나 비염에 걸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일반주택이나 아파트를 막론하고 시멘트로 만든 공간에 생활하면서 추운 영하의 날씨에도 실내에서는 반팔을 입고 지낼 만큼 난방이 잘되어 건조해지기 쉬운 환경으로 변했다. 잠시 이동할 때도 자가용 사용이 높아져 아이들이 밖에서 보내는 시간은 현저히 줄었다.

김정현 원장은 “몸 밖의 실내 환경도 더워지고 건조해졌지만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요즘 아이들은 몸속도 더워졌다. 외부의 건조하고 더운 기운과 속열이 더해져 폐기운의 흐름을 막아 정체되면 비염이나 감기 등에 자주 걸리는데, 조열한 기운으로 코 점막이 건조해져 콧물이 마르거나 코 안에만 머무르고 코딱지가 좋아진 것이 요즘 비염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를 가리켜 일명 '아파트형 비염'이라 표현했다.

몸속에 난 불부터 꺼야 비염도 치료돼
소아 비염은 증상이 비교적 경미하고 쉽게 낫는 반면, 재발 가능성이 높고 축농증, 천식, 중이염 등의 합병증을 잘 동반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비염이 만성화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며 입을 벌리고 숨 쉬는 버릇이 지속될 경우 아이의 얼굴형까지 바뀔 수 있으므로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게 중요하다.

한방에서는 먼저 비염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 치료하는데 아파트형 비염의 경우엔 몸속의 열을 내려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김정현 원장은 “보통 수우각이나 생지황 등의 약재가 들어간 탕약을 처방하는데 수우각은 열을 내려주며 생지황 등은 열로 소실된 몸속 진액(수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코와 연결된 폐를 튼튼히 하는 치료를 병행하여 감기나 비염 등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근본 면역력을 길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김 원장은 덧붙였다.

속열 만드는 음식 삼가고 갈근차, 오미자차 좋아
아파트에 살더라도 난방을 강하게 하지 않도록 하며 특히 아이 피부와 직접 닿는 바닥은 너무 뜨겁지 않도록 맞춰준다. 또한 코가 메마르지 않도록 실내 습도 조절에도 신경 써야 한다. 가습기를 사용하거나 실내에서 빨래를 건조시키는 것도 좋다.

식습관 개선도 중요하다. 속열을 만드는 인스턴트식품이나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등 단 군것질을 제한하고 자기 직전에 먹는 음식이나 물고자는 젖병 혹은 폭식과 과식도 삼간다. 속열에 의한 비염이 확인된 경우에 치커리, 상치, 미나리 등의 쓴 나물이나 녹색채소를 먹으면 속열을 식혀주고 진액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므로 좋다. 평소 갈근차나 오미자차를 마시면 폐를 촉촉하게 해줘 비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차가운 물이나 음식은 실온에 30분~1시간 정도 두었다가 냉기가 빠지면 먹이도록 한다.

조인스닷컴 이승철(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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