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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초등학교 ‘미국 교과서’ 수업 바람 “유학 안 부러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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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초 원어민 교사 S 크레이그 데이비스가 3학년생들에게 미국 수학 교과서로 분수의 개념을 가르치고 있다. 정치호 기자]

영어교육 열풍에 힘입어 미국 교과서의 인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학원가뿐 아니라 사립 초등학교로 미국 교과서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교과서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은 “영어뿐 아니라 수학·과학·사회 지식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강남권 일부 학원에선 100만원을 호가하는 미국교과서반을 운영해 사교육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미국 교과서 학습 현장을 가 봤다.

#1
7일 오전 11시. 서울 노원구 청원초 F-1반. 3학년생 10여명이 수학 수업을 받고 있다. 책상 위에는 ‘MATH(수학)’라고 쓰인 미국 교과서가 있다. “Today learns from a fraction(오늘은 분수를 배워요).” 원어민 교사 S 크레이그 데이비스(미국)는 칠판에 큰 원 두 개를 그린 후 각각 삼등분·육등분해 한 칸씩 색을 칠했다. 그림 아래에는 1/3, 1/6이라고 썼다. “Which is larger?(어느 쪽이 더 클까요?)” 학생들이 큰소리로 “One Third(1/3)”라고 외쳤다. 사립인 청원초는 미국 교과서를 주 교재로 채택해 주 13시간씩 수학·과학·읽기·사회과목을 영어로 배운다. 임무영 교장은 “학생들의 영어 수준을 4단계로 나눠 수업을 한다”며 “원어민 교사 9명이 담임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2
같은 날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학원 강의실. 초등 4학년생 6명이 캐나다인 강사 니콜 웨버와 과학 수업을 했다. 이날 주제는 ‘Plant life cycle(식물의 일생)’. 학생들은 식물도감 수준의 미국 과학 교과서를 읽으면서 토론식 수업을 진행했다. “Let’s see compare some differences between human's life and plant's lifetime.(식물의 일생과 사람의 인생을 비교해볼까?)” “Seed of a plant is same as an embryo of mom double speed(식물의 씨앗은 엄마 배 속의 태아와 같아요·대치초 4년 최현승군).” YBM 개포IA 김완수 원장은 “북미주 교과 과정을 그들의 교과서를 통해 배우면서 영어와 지식을 함께 습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파고든 미국 교과서 서울 강북구 영훈초는 주 15시간 영어 수업을 한다. 한국 교사는 한국 교과서를, 원어민 교사는 미국·호주 등 영어권 국가의 교과서로 수업한다. 서울 중구 리라초는 미국 교과서를 활용한 영어몰입수업 직전과 수업 후 한국어 수업도 한다. 권리라 부교장은 “영어로 배운 개념을 우리말로 다시 확인하자는 의미”라며 “원어민-한국인 교사가 한 팀이 돼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매원초는 주 14시간 수학·과학·창의력 계발 등을 영어로 가르친다. 서울 노원구 상명초는 주당 12시간 영어수업을 하면서 수학·과학을 미국 교과서로 가르친다.

공립인 서울 광진구 광남초는 영어몰입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돼 3월 영어몰입교육을 시작했다. 정성섭 교장은 “교사들이 미국 교과서를 번역해 수학교재 ‘Math in english’를 만들었다”며 “원어민 강사가 일주일에 1시간씩 영어로 수업을 하고 한국 교사는 영어와 우리말로 이해를 돕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미국 교과서 열풍으로 인해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은 커졌다. 공립과 달리 원어민 교사 채용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원어민 교사의 비용 부담이 수업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학생들은 영어학원을 다녀야 하는 것도 문제다.

대치동 학원가 가보니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는 ‘미국교과서반’ 간판을 내건 영어 학원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교육과정은 대개 한 학기 동안 문학·사회를 배웠다면 다음 학기에는 역사·과학 등을 배워 1년 동안 미국의 한 학년 과정을 다 배우는 식이다. 주요 교과목마다 담당 교사가 있지만 학원에 따라 우리나라 초등학교처럼 한 강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치기도 한다.

학원 수업은 미국식 교육에 맞춰 말하기와 쓰기를 강조한다. 소규모 집단으로 나눠 토론을 하거나 주제를 주고 발표하게 한다. 에세이를 강조하는 편이다. 미국에 유학을 간 한국 학생들이 에세이 쓰기를 가장 어려워해서다. 원어민이 일대일로 첨삭해주는 학원들도 있다. 미국교과서반은 주 3일 기준으로 30만~40만원대. 100만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

환율이 오르면서 미국 교과서 가격도 뛰었다. 6만원쯤 하던 과학 교과서가 7만원대 후반에 판매된다. 통합교과 형태의 ‘Literacy Place’(스콜라스틱사)와 ‘Treasures’(맥그로힐사)를 고르면 한 권으로 다양한 교과를 볼 수 있어 경제적이다.

시각 자료·수행과제 알찬 과학 교과서 미국 교과서 중 학부모들이 추천하는 과목은 과학이다. 초등 1·5학년 자녀들에게 미국 교과서를 가르치는 전주 유일여고 박순옥 교사는 “과학 교과서는 화보와 시각 자료가 풍성하고 과학적 사고를 키워주는 실험과 수행과제로 구성돼 있다”며 “사회·과학에 대한 배경지식과 용어를 배워두면 iBT 토플 등 시험 준비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세종대 영문과 우은주 교수는 “미국 교과서 중 읽기 교과서는 어린이들이 읽어야 할 책의 일부가 발췌돼 있어 한 권만 읽어도 여러 권을 읽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 전공자가 아닌 이상 집에서 엄마가 미국 교과서를 지도하기란 어렵다. 박 교사는 “우리 교과서의 익힘책 개념의 ‘Practice Book’이나 미국 출판사에서 출간된 지침서 같은 보조 교재를 활용하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또 “교과서를 읽은 후 책 뒤에 나오는 문제를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다”며 “한국 교과 과정과 미국 교과를 비교해 비슷한 내용을 찾고, 미국 교과서 내용을 발췌해 교재로 활용해볼 것”을 권했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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