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0년대初 영동개발 금융스캔들 곽근배씨 '뚝심의 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영동개발이 되살아났다.80년대 초반 이철희(李哲熙).장영자(張玲子)사건,명성그룹사건과 함께 3대 금융스캔들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영동개발 사건의 주역들이 재기한 것이다.
금융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83년 당시 영동개발진흥사장이었던곽근배(郭根培.56.사진)씨가 지난해 4월 한진그룹 조중건(趙重建)부회장의 개인기업인 한국산업안전㈜을 인수하면서 재계에 복귀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이 회사 회장을 맡 고 있는 郭씨는 이외에도 형제들과 함께 ㈜세우리.단대유통등 4개사의 경영에관여하며 금융거래도 빠르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郭씨가 인수한 한국산업안전은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전국 12개 공항의 경비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는 기업이다.종업원4천7백여명에 자본금 5억5천만원이며 매출액 4백40억원에 5억5천만원의 흑자(95년)를 낸 짭짤한 회사다 .청원경찰등 인력을 사용하는 인(人)경비업체로는 국내 2위로 올해 매출목표는6백억원.
관련업계에서는 이 기업의 인수에 영업권을 포함해 1백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郭씨는 이 회사를“평소 친분이 있는 趙부회장의 제의를 받아 인수하게 됐다”고만 말할 뿐 정확한 인수자금과 과정등은 밝히지 않았다 .
郭씨는 이와 함께 94년부터 경기도성남시 단대오거리에서 대형슈퍼.전자제품매장.볼링장등을 갖춘 단대유통(연간 매출액 1백억원선)을 직접 경영중이며,막내동생 경배(慶培)씨가 대표로 있는㈜세우리건설의 경영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최근 세우리건설은 한국산업안전의 보증을 받아 2금융권에서 60억원대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서 리조트 사업도 징역살이를 마치고 90년 출옥한 그는 한동안 미국.싱가포르로 건너가 리조트사업등에 투자하기도 했으나 94년 다시 귀국해 지금의 사업을 벌이게 된 것.
문제의 영동개발진흥은 郭씨의 모친 이복례(李福禮.78)씨가 일으킨 80년대 신흥기업.李씨는 60년대부터 충남온양의 온천지역에서 제일여관을 경영했는데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이 단골일 정도로 음식솜씨가 뛰어나 떼돈을 벌었다.여관을 운 영해 번 돈을 70년대 사채(私債)및 부동산투기 바람을 타고 굴려 기업화하는데 성공했다.
아들 3형제중 차남인 근배씨가 사장을 맡았던 영동개발진흥을 모체로 1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해외건설.호텔.단자.금고업까지손을 댔다.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자금난에 봉착했고 급기야거래은행(조흥은행 중앙지점)을 통째로 매수해 은행 보증어음을 마구 발행하다 덜미가 잡혔던 것.
83년9월 사건이 터졌을 때 불법지급보증 금액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1천6백71억원에 이르렀다.수사결과 李씨와 아들근배씨.이헌승(李憲升)당시 조흥은행장등 57명이 사법처리됐다.
영동개발그룹은 해체됐고 수많은 거래.납품기업들이 도산했다.李여인과 郭씨는 각각 15년과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李여인은90년 신병(身病)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풀려났다.
郭씨는“영동개발사건은 분명 우리가 잘못한 것이며 피해자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아직도 당시 채권.채무관계에대한 소송이 끝나지 않아 완전히 재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그는 또“어머니는 석방된 후 동생이 경영 하는 제주도 소재 한 호텔에서 주방일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손병수.김동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