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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자원봉사는 사회 활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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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주 버락 오바마 정부가 새로운 미국을 향한 대장정에 국민들의 도움을 청하고 대대적인 자원봉사 육성책을 마련한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국내 자원봉사계 인사들은 이 같은 한탄을 쏟아냈다. 5월 27일 이명박 정부가 정부위원회의 일괄 폐지를 결정하면서 지난해 만들어진 자원봉사 국가 5개년 기본계획의 심의기구인 총리실 산하 자원봉사진흥위원회까지 폐지키로 한 것을 겨냥한 말이었다.

“미국은 역사의 고비마다 젊은이들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1960년대도, 70년대도 그랬습니다. 이제 다시 새로운 변화를 만듭시다(Let’s Make a Difference)!”

1994년 9월 12일 정오. 미국 보스턴 다운타운에 위치한 ‘보스턴 커먼’ 공원에서 열린 ‘미국봉사단(AmeriCorps)’ 발대식. 연단에 오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공원에 모인 600여 명의 아메리코 청년 봉사단원들을 향해 “변화를 만들자!”고 외쳤다. 같은 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을 비롯한 미 전역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축사와 함께 2만 명의 아메리코 단원을 위한 발대식이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역사의 고비마다 국가 재건을 외치며 일어선 미국의 청년들, 봉사단원들. 버락 오바마 정부는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빈민지역 학교를 돕는 교실봉사단·건강봉사단·청정에너지봉사단·전역장병봉사단 등 국가봉사단(National Service Corps) 등의 프로그램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국가봉사단 프로그램은 세계에서 미국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제도다. 대부분 민주당이 이끌었다. 1930년대 대공황이 몰아치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작한 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가 그 효시다. 당시 루스벨트는 9년 동안 300만 명의 청소년을 미 전역의 국립·주립공원에 배치해 숲 가꾸기 사업을 펼치도록 했다. 캠핑생활 중 각종 교육을 실시하고 월 30달러의 지원금 중 5달러는 본인에게, 25달러는 그들의 가족에게 보내 생활을 돕도록 했다. 오늘날의 요세미티·옐로스톤·버지니아 숲 등 미국의 아름다운 국립공원들은 모두 당시 자원봉사활동의 산물이다.

 그 후 61년 케네디 대통령은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64년 존슨은 VISTA·RSVP, 93년 클린턴은 아메리코(AmeriCorps)를 만들었다. 공화당 정부 역시 그 효용성을 인정하고 90년 부시 대통령은 국가봉사 사업에 더 많은 공·사립 기관, 비정부기구(NGO)들이 참여하도록 관련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직접 의회비준을 받아 임원들을 임명하는 연방 진흥위원회(Commission)도 신설했다.

미국의 국가봉사 사업은 영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식은 아니지만 정부가 나서 자원봉사자와 그 단체들이 앞장서 각 지역에서 ‘활성화된 지역사회(active community)’ 운동에 앞장서도록 막대한 예산을 지원한 것이다. 98년 영국 정부가 민간과 협약을 맺고 처음 실시한 그 정책은 당시 블레어 총리의 총선공약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이나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자원봉사운동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대통령이 앞장서 자원봉사자들에게 국가 재건을 위해 동참할 기회를 만들고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는 10개 부처 공무원과 민간인들이 동수로 참여했던 자원봉사진흥위원회를 폐지하겠다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고 있다. 자원봉사진흥 기능을 일개 부처 사업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법안을 입법예고해 많은 사람의 반발까지 사고 있다. 자원봉사를 사회 활력으로 활용하면서 적극 권장하는 선진국 정부들과 자꾸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창호 중앙일보 시민사회연구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