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안 하면 문제 안 삼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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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03면

군대 내 동성애 문제는 미국과 유럽에서 민감한 정치 이슈로 부각돼 왔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동성애자의 군 복무 문제였다.

미국·유럽에선

군 복무 금지 조항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선거 공약을 실행에 옮기면서 지지도가 급락했던 것이다. 당시 미 의회엔 유권자의 반대 전화가 40만 통이나 빗발쳤다.

클린턴 대통령은 고심 끝에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마라(Don’t ask, don’t tell)’는 새 관리 지침을 발표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지 않는 한 문제 삼지 않되 사실이 드러날 경우에는 종전처럼 강제 전역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올 7월 워싱턴 포스트와 ABC 방송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군 복무를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2003년 연방대법원은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텍사스 주법(Sodomy법)에 대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군부 내부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군인의 동성애 행위는 불륜과 마찬가지로 부도덕하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미 군사법원은 ‘군인의 비자연적·비정상적 성교 행위’를 처벌하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군대 내 동성애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99년 9월 유럽인권재판소는 영국 정부가 동성애자임을 시인한 군인 2명을 강제 전역시킨 데 대해 “사생활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판결했다. 다음해 영국 국방부는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 규정을 폐기했다. 같은 해 유럽평의회는 동성애자 차별 금지는 물론 학교·병원·군대·경찰 등에서 동성애 혐오를 없애는 교육을 실시할 것을 유럽 각국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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