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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가는간이역>9.능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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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사람에게도 빛깔이 있다.분(粉)과 옷으로 꾸민 색이야 얼마나가겠는가.
삶에서 절로 우러나는 빛깔은 감추려 해도 선연하다.
어떤 이의 빛깔은 특히 오래도록 남는다.세월의 바람을 맞아도바래지 않아 오히려 더욱 광채를 띤다.
후대에 많은 이들의 갈길을 비추는 그 빛들은 역사가 우리에게주는 큰 선물이다.
능내역(陵內驛)으로 간다.1월의 아침,낡은 운동화를 깨끗하게빨아 신고 경기도남양주군조안면능내리의 이 작은 간이역으로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선생을 만나러 간다.
청량리에서 기차로 40분.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이곳에 아름다우나 따라가기 힘든 멀리있는 빛,다산의 빛이 어려있다.
능내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10분.다산이 나고 죽은 마현마을이있다.능내는 한줄기로 뻗어가던 한강이 남과 북으로 갈리는 곳.
넉넉한 앞마당처럼 펼쳐진 드넓은 팔당호는 겨울하늘의 회색빛을 머금었다.
다산의 묘에 오르면 멀리 소내섬이 보이고 그가 남긴 큰 빛이강물위에 비치는 것같다.
최승범교수가 수필집.한국을 대표하는 빛깔'에서 말하듯 다산의색은 쑥색이다.몇달이고 비 한방울 없어 누런 흙먼지 날리는 논밭,그 둔덕에 돋은 구황(救荒)의 푸른 쑥,바로 그 색이다.
춘궁기에 백성의 배고픔을 덜어준 것이 푸른 쑥이듯,다산이 없었더라면 우리 정신사의 빈곤은 얼마나 더했을 것인지.
2천5백여 수의 시,5백여권의 저서.정인보 선생같은 이는 다산을 가리켜“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라고 했다던가.
하지만 다산의 빛은 박학다식한 대학자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김성우(36.경기도성남시수정구)씨.다산 생가 앞에서 만났다.
“다산을 존경합니다.훌륭한 참 학자셨죠.학자였으면서 언제나 백성의 실제 삶을 무엇보다 걱정한 점을 특히 존경합니다.” 김씨는.드문드문이긴 하지만' 목민심서를 몇번쯤 읽었다고 했다.갓백일이 지난 딸 영현은 젊은 아내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선생님이다.만약 시간을 되돌려다산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다산은 이 시대의 선생님들에게,그리고.지도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희희낙락 즐겁게도 태평세월같은 모습이며/높으신분 그 모습은 우람하고 풍성하다/간사한 인간들은 거짓말만 꾸며대고/교활한양반들은 걱정이라며 하는 말이/오곡이 풍성하여 흙더미처럼 쌓였는데/농사에 게으른자들이 스스로 굶주린다고 하네” -정약용.굶주리는 백성의 노래(飢民詩)'중에서.
다산은 1794년 경기 암행감사로 연천지방을 돌아보고 쓴.기민시(飢民詩)'에서 굶주리는 백성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처참함을 백성들의 탓으로 돌리는 위정자와 가진자들의 그릇된 논리,그 위선의 논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비단 시뿐이며 또 다산의 시대뿐이겠는가. 겨울비 오는 마현마을,그의 생가 마루턱에 앉아 그가.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들을 읽는다.
그럴 수 없는 줄 안다.하지만 그가 저 세상에서라도 오늘 이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몇 통의 편지라도 보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남양주=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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