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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도 유분수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호 07면

방송사 제작 여건이 어려워져 드라마가 대거 사라지고 오락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메울 예정이란 보도가 나왔다. SBS-TV의 경우 금요일 저녁이면 연속 세 편으로 오락 쇼를 내보내는 편성을 선보일 정도다. 시청자로서는 앞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오락으로 만들어 버리는’ 예능 방송의 무한한 상상력에 적응해 나가야 할 듯하다. 요즘처럼 골치 아픈 시대에는 드라마보다 몰입을 훨씬 덜해도 되는 오락 예능 프로의 가벼움이 우리를 더 적절히 위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SBS의 새 프로 ‘절친 노트’는 어찌 보면 참신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리얼 화해 버라이어티’라는 타이틀로 사이가 좋지 않은 연예인들을 데려다가 화해하게 해 준다는 것이 이 프로의 의도다. MC 김구라와 가수 문희준을 엮었던 ‘파일럿 쇼’가 반응이 좋았는지 이번에 정규 편성돼 아예 두 사람을 진행자로 등장시켰다.

1~2회의 에피소드는 6년 전 불화로 그룹까지 해체했던 ‘샵’의 이지혜와 서지영을 화해시키는 일. 인간의 ‘관계’를 응용한 MBC-TV의 ‘우리 결혼 했어요’ 같은 리얼리티 쇼에 진짜 현실 속의 ‘관계’를 대입한 변형 리얼리티 쇼를 의도하면서 출연자들이 화해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긴장감을 즐기도록 하는 요소도 있다.
문제는 과연 이 쇼가 다루는 ‘갈등’과 ‘화해’라는 소재가, ‘오락 프로’임을 내세운 이 쇼의 서스펜스가, 시청자가 유쾌한 마음으로 즐길 만한 것이냐는 점이다.

한 팀의 멤버로 있다가 6년 동안이나 서로 얼굴을 안 볼 정도로 갈등을 겪은 사람들이 다시 마음을 열어 화해하기까지는 정말로 쉽지 않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도 두 사람이 진심으로 화해할 의사가 있을 때 얘기다. 살다 보면 정말로 화해하고 싶지 않은 관계도 있을 수 있고, 그건 사생활과 개인의 결정으로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 이 쇼는 “이제 겨우 그 싸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내 이름으로 홀로 서기 시작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서지영을 굳이 데려다가 그 상처를 다시 들먹이며 파헤친다. 그뿐인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상대방과의 대면에 이어 1박2일의 여행에서 마치 미션 완수하는 게임 프로처럼 화해의 수순을 밟는다. 이런 억지 과정을 겪고 난 뒤 맺어지는 화해의 진정성을 믿는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그런 모습을 보며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MBC의 ‘몰래카메라’가 인기를 얻었을 때도 보는 사람 좀 즐겁자고 카메라가 한 사람을 골탕 먹이는 그 못된 심보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그래도 그때는 당하는 연예인의 희생이 잠시면 끝나고 그의 인생에 별다른 폐를 끼치지 않았기에 가벼울 수 있었다. 시청자로서는 약간의 죄책감만 감수하고 나면 곧바로 사실이 밝혀지는 안도감과 시원한 웃음 한번 웃을 수 있었다. 카메라와 시청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약속 내지 거래 같은 게 있었다. 이건 한번 웃자고 카메라와 시청자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는.

‘절친 노트’는 약간 다르다. 웃자고 하는 오락 프로가 담기에는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과 화해가 너무 부담스럽다. 실제 상황과 감정이기 때문이다. 오락 프로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바꾸고 자존심까지 내놓으면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강요당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서글픔까지 느껴진다. ‘이걸 보며 웃어야 되나? 아니, 웃어도 되나?’ 싶은 감정의 혼란을 겪도록 만드는 것을 오락 쇼로서 이 프로의 새로움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러다가는 싸우며 이혼했던 연예인들 불러다가 화해 내지 재결합시켜 보겠다고 나서는 쇼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filmpo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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