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V읽기>개그보다 더 웃기는 세상살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아세니오 홀'.제이 레노'.데이비드 레터맨'등의 미국 토크쇼들은 종종 우리나라의 빈약한 개그에 비해 찬사의 대상이 된다.성적 농담이나 정치풍자등 소재의 금기가 없다는 것에서부터 제작진의 성실한 태도등이 부러움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코미디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인적.물적 자원의 차이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비교는 하지 않을 것이다.몇 사람이 둘러앉아 떠오르지 않는 착상을 억지로 짜내는 빈곤한 입장과수백명의 어마어마한 인원이 공장에서 물 건을 만들어내듯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대량자본 시스템은 애당초 경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외국의 코미디를 즐기지 않는다.
미국에서 성공했다는 시추에이션 코미디.빌 코스비 쇼'.로잔'등도 국내에서 시청률은 매우 저조한 편이었는데 이는 희극의.현재적 사회성'과.형이상학성'이라는 내적 본질 때문이 다.풍자의 배경을 논리적으로 알지 못하는 치매환자들은 희극을 즐기지 못하고 아리스토파네스나 몰리에르가 아무리 위대했어도 그들의 희곡을보며 배꼽을 잡는 현대인이 없는 이치와 같다.
신파극.검사와 여선생'이나.이수일과 심순애'의 비극성은 쉽게이해되지만 별신굿의.훈장거리',일제시대의 풍자극.바보 장두월',광무대의.웃음거리'등이 다시 희극으로 되살아날 가능성은 거의없는 것이다.
반면 공허하기 짝이 없는.공주병 시리즈'나.만득이 시리즈'에우리가 쉽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은.지금 여기서'그것들이갖는 사회심리적 이미지 때문이다.마찬가지로 일요일이면.아이 러브 코미디'.슈퍼 선데이'.일요일 일요일 밤에 '라는 닮은꼴의세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것도 아마 시청자들이 휴일 끝에 느끼는감정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월요일이 오면 되풀이 전개될 지루한 1주일에 대한 전망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므로 일요일 밤이면 차라리 아무 생각 없는 아이 가 되고 싶다.
그러나 그런 구경거리들을 보는 심정은 유쾌함보다 차라리 무력감에 가깝다.물론 TV라는 물건 자체가 일방적으로 프로를 내보내는 매체이다 보니 관객들은 손발이 마비된 채 꼼짝없이 그들을보도록 강요받기도 하지만 열살의 정신연령에게나 어울릴 비현실적이고 본질을 호도하는 내용을 본 다음 밀려오는 자괴감이 우리를더 불쾌하게 한다.
코미디언들은“실컷 즐긴 다음에 유치하다,단순하다,왜 말이 많으냐”고 하지만 관객들의 그런 냉소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실은 진정한 광대의 역할일 수도 있다.자신보다 못해보이는 주인공을 조롱함으로써 일상에서 받는 상처나 열등감을 보상받는다면 관대한 마음으로.TV속의 바보들'을 그냥 둬라.
개그보다 더 황당하게 우리를 웃기고 서스펜스 영화보다 더 심장을 죄는 사건들이 너무 잦은 세상에서 아무리 혼신의 연기를 다해도 우리가 웃지 못하는 까닭은 꼭 코미디언만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이나미 <신경정신과 의사〉< p>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