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이불감 자투리로 한복 지어 판 게 첫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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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06년 뉴욕 ‘이영희 한국박물관’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왼쪽에서 둘째)과 기념사진을 찍은 이영희(맨 오른쪽)씨. 다른 두 사람은 1970년대 미국 로큰롤 가수 아트 가펑클의 가족이다. 이씨는 30여 년간 모은 한복을 이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사진=‘매종 드 이영희’ 제공


마흔에 한복 집을 연 그는 57세의 나이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 패션쇼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했다. 우리의 옷 한복은 전 세계의 눈이 모이는 국제 패션 무대에 그렇게 올랐다.

세계인이 극찬하는 한복 패션을 만들어낸 디자이너 이영희(72)씨 이야기다. 이씨는 일흔을 넘긴 지금도 전세계에 한복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는 “한복 디자이너로만 인식되는 것은 섭섭하다”면서도 “한복은 내 운명이자 생명”이라고 말한다. 얼핏 모순 같다. 하지만, 평생 한복의 세계화라는 화두를 가슴에 품고 살았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영희씨의 대표 디자인인 ‘바람의 옷’.백금천으로 만들어 옷 값이 60억원으로 추정된다.

그런 그가 자신의 한복 인생 32년을 정리하는 『파리로 간 한복쟁이』를 최근 펴냈다. 파리에 첫 진출한 그때부터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한복과의 첫 인연, 전 세계에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하겠노라며 독한 마음을 먹고 한복 연구에 몰두했던 일 등등. 이를 사람들에게 크게 한 번 외치고 싶어서 책을 냈다고 했다.

한복과의 인연은 우연이었다. 사촌 올케와 의기투합해 알음알음 명주솜으로 이불을 해서 팔다가 문득 남은 자투리 천이 아깝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 천으로 한복을 만들었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당시엔 외출복으로 한복을 입는 사람이 많았어요. 수요가 있었죠. 게다가 어머니가 천에 직접 천연 염색을 해주신 덕에 고운 색감으로 이름을 얻었어요.”

그러자 용기가 생겼다. 마흔이 되던 해, 서울 서교동에 ‘이영희 한국의상’을 열었다. 말기(치마나 바지 맨 위에 둘러서 댄 부분)단 수를 놓은 치마, 색이 다른 천을 중간에 끼워 넣는 단청무늬 폐백옷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름이 알려지자 그의 걸음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이왕이면 전 세계에 우리의 멋을 알리고 싶어졌다. 93년 파리 프레타 포르테 패션쇼에 처음 한복을 올렸다. 이듬해 S/S 컬렉션에선 저고리를 벗긴 한복(일명 ‘바람의 옷’)을 선보였다. 서양 드레스에 뒤지지 않는 한복 드레스가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파리 부티크를 거쳐 뉴욕에 한복 집을 열었고, 2004년엔 뉴욕 맨해튼에 지금껏 모은 한복을 전시하는 ‘이영희 한국 박물관’도 열었다. ‘한복’과 ‘이영희’는 어느새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모시로 만든 현대적 감각의 한복. 1996년 열린 이영희씨의 파리 컬렉션 화보집 실린 작품이다.

그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처음 한복집을 열 때까지 패션을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디자이너와 한복쟁이 사이에서 그의 고민은 깊어갔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불안은 더해갔다. 하지만, 이왕 들어선 길.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복을 수집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좋은 옷이 있는 곳이라면 팔도강산 안 다닌 곳이 없다. 한복과 동고동락하는 사이 그녀는 그 세계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남녀가 사랑할 때, 흔히 그 사람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죠. 한복에 대한 제 마음도 그와 같아요. 한복은 제 운명이자 생명입니다.”

한복의 어떤 면이 이토록 그를 사로잡았을까.

“빨간 치마에 연두 저고리, 그리고 먹자주색 깃. 그 색의 조화를 한 번 자세히 보세요. 완벽하고 아름다운 조화, 그건 예술입니다.”

그런 예술작품이 사라져가는 현상에 안타까움이 크다. 품위 있는 기모노 한 벌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본인과도 대조적이다. 한국은 명절에도 한복 입은 사람을 갈수록 찾기 힘들어지지 않는가. 서양 사람들에게도 기모노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한복이 알려진 것은 고작 15년 남짓. 그는 이 점을 여러 번 언급했다.

“일본이 자신의 문화를 홍보하는 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기모노도 마찬가지죠. 지속적인 홍보로 수십 년 동안 이를 알려왔어요. 이 점을 꼭 배워야 합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아요.”

그는 “다 큰 아이들에게 갑자기 한복을 입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라며 “초등학생 때부터 한복에 대해 자연스레 접하는 시간을 늘리고, 일본처럼 부모가 한복 입는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에겐 꿈이 있다.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만든 옷을 입하는 것이다. 한복에서 영감을 받고, 한복의 선을 살린 현대적 복장 말이다.

“저는 한복이 새롭게 태어나는 데 작은 불씨를 지폈을 뿐입니다. 풀밭에 겨우 길을 냈을 뿐이죠. 수십 년이 지나도 전 세계인의 사랑이 식을 줄 모르는 샤넬 같은 브랜드를 만드는 게 제 목표에요. ‘동양의 샤넬’ 말이죠. 제 생에 이 일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한복의 현대화를 반드시 이어가야 합니다. 10년, 20년이 걸릴지라도 말이죠.”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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