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올드 랭 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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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스코틀랜드 태생의 18세기 영국시인 로버트 번스는 째지게 가난한 농부의 큰아들로 태어났다.청년기에 이미 허리가 많이 굽었던 것도,우울증과 통음(痛飮)등으로 37세의 짧은 삶을 마감한것도 어린 시절부터의 고된 노동 탓으로 알려져 있다.일평생 가난과 질병 등 불행이 끊이지 않았으나 그는 결코 자포자기하지 않고 언제나 절망으로부터 빠져나와 삶을 즐기려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같은 삶의 배경을 감안할 때 그의 시가 스코틀랜드의 전원생활과 그곳 사람들의 질박한 정서를 담는 한편.서민의 목소리'를대변하고 있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특히 약자에게 군림하는 강자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가진 자들에 대한 불같은 증오가 그의 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옛 민요에 가사를 붙이는 형식으로 씌어진.올드랭 사인'은 지난 시절의 고향에 대한 갖가지 추억들을 소박하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오랫동안 헤어졌던 옛날 친구들을 모처럼 만나 추억을 되새기면서 술잔을 나누는 것이 이 시의 겉에 나타나는 모습이지만,내면적으로는 향토애,친구와의 우정,만남과 헤어짐 등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이 노래가 전세계적으로 만날 때,헤어질 때,또는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애창돼오고 있는 것도 그 까닭이다.스코틀 랜드에서는.국민시인'으로,보통.농민시인'또는.민중시인'으로 불리는 번스의.올드 랭 사인'이 동류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로 즐겨 불리는 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금년 한 해를 보내는 직장인들의 송년회에서 유독 이 노래가 많이 불렸다면 거기에는 까닭이 있을 법하다.기구축소니 명예퇴직이니 해서 수많은 직장인들이 자리를 떠난데다가 노동관계법 기습처리로 직장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흉흉한 것과 무관 하지 않을 것이다.“내년 송년회에도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을까”또는“나 또한 내년에는 자리를 떠나야 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초조감이너나 할 것 없이 가슴 속 한귀퉁이를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올드 랭 사인'이.만남의 노래'가 아닌.이별의 노래'로만 애창돼서는 밝은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그것은 이 시를 만든 번스의 참뜻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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