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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적게 담근 김장김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뭐 겨우 10포기밖에 안 한다구?”김장한다고 어머님께 전화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다.“너무 적어요? 요즘은 옛날처럼 그렇게 많이 담그지 않아요.김치가 떨어지면 그때 또 새로 싱싱하게담가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설득과 호소가 담긴 대 답을 했다.
큰손 어머님께서는 이런 조막손 며느리가 탐탁지 않아 장황한 이야기를 하신다.그 옛날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연탄을 들여놓고,김장을 해넣는 것이 큰 일이었다며 김장은 1백포기 이상을 2~3일에 걸쳐 힘들게 담갔다며 이왕하는거 좀 넉넉 히 해서 겨우내 김치찌개며 빈대떡이며 국수말이를 해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조목조목 충고하셨다.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듯한 짤막한 응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드디어 어제 김장을 했다.어머님의 의견을 고려(?)해서15포기를 담갔다.아침 일찍부터 배추를 사다 절이고 무 씻어 채썰고 양념 다지고…저녁 늦게야 배추 속을 넣게 되었다.힘겹게나르던 큼지막하고 먹음직스럽던 배추는 어느새 소금에 절어 볼품없는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나도 모르게“어머나,이게 전부야”라는 힘없는 소리가 나왔다.
15포기면 충분하리라던 나의 생각은 그순간 무너졌다.이러한 후회는 한 겨울에 김장독에서 살짝 언 김치를 꺼내다 쭉쭉 찢어먹을 때면 한층 더 할 것 같다.나는 잠시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솔직히 복잡하고 번거롭게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 간단히 편안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도움을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겠다는 개인적 이기심 때문에…내가 좀 힘들더라도 어머님 말씀대로 김장을 풍족하게 했더라면 더많이 나눠 먹을 수 있었을텐데….
다음번 김장 때는 친지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미리 전화를 해야지.
“땅 속에 묻은 맛있는 김장김치 먹고 싶지? 그러면 내일 우리 집에 와.그 김치를 담그려고 하거든.” 이은주<경기도고양시일산구마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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