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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바즈 루어먼 감독 96년작 "로미오와 줄리엣"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로미오와 줄리엣'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제작시점(68년)의 분위기를 반영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작품이다.레너드 파이팅과 올리비아 허시가 외롭게 치르는 결혼식에등장하는 백합꽃 화병에 대해 제피렐리는.총대신 꽃 을'.필요한건 사랑뿐'을 외쳤던 히피세대에 바치는 상징이었다고 술회한바 있다. 반면.댄싱 히어로'의 바즈 루어먼 감독이 96년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은 신세대가 벌이는 고전적 사랑의 비극을 탐욕에 허우적대는 현대도시의 세기말적 상황과 연결시켰다.
원작의 무대인 중세고도 베로나는 거대기업과 미디어가 지배하고인종갈등과 폭력이 들끓는 현대도시 베로나비치로 바뀐다.카풀렛가와 몬타규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층빌딩으로 겨루는 라이벌 대기업이고 흑인.히스패닉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양가 젊은이들은 하와이 티셔츠.힙합바지를 입고 스포츠카를 몰고다니며 최신 패션권총으로 총싸움을 벌인다.
집안싸움에 관심없는 로미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이 원수집안의 딸 줄리엣(클레어 데인스)과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다.격렬하지만 유리꽃처럼 유약한 두 남녀의 사랑은 배경인 베로나비치의난폭한 숨결과는 선명한 대조를 보인다.그렇다고 거창한 문명묵시록을 연상한다면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 청춘배우들이 셰익스피어의 고어체대사를 읊조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지럽고 빠른 화면전개와 귀청을 두드리는 최신음악에무게중심을 둔.필름으로 만든 랩'이기 때문이다.특히 울긋불긋한물고기 어항사이로 이뤄지는 첫만남,한밤 조명켜 진 수영장서의 고백,아침햇살을 이불삼아 나누는 정사,네온사인같은 십자가 행렬아래의 사별 신은 스틸로 뽑아 액자에 걸고 싶을 만큼 아름다우며 다층적인 메시지를 아쉬워하는 관객도 만족할 만한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준다.28일 개봉.

<강 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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