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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 시평

대북정책, 오바마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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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미국이 세계에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확산할 특수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러한 사명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양측의 입장이 갈린다.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보유한 강한 힘을 실제 사용하는 것을 원했다. 그러나 오바마 당선자의 경우 외교와 경제 원조를 더 중요시하는 실용외교를 중시한다. 그리고 군사력과 같은 물리적 힘의 사용은 불가피한 경우로 미루고, 도덕적인 본보기와 미국적 가치의 힘, 이른바 소프트 파워를 활용할 것을 강조한다.

오바마는 매케인처럼 냉전기에 정치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1980년대 남아프리카 인종차별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와 외교 문제에 눈뜨기 시작했다. 또한 80년대 후반 동구 공산권에서 벌어진 수많은 시민봉기와 체제전환을 보면서 개인의 힘이 뭉쳐 정치·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개도국의 저발전이 혼란의 근본이며, 안보 문제도 협상과 경제개발로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기본적인 외교철학 때문에 미국의 대북정책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오바마 정부는 6자회담이라는 다자협상 틀은 계승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북한 문제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할 것이다. 공화당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을 안보 문제로만 보고 그 자체에만 매달리며 북한이 핵을 개발하도록 만드는 원인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이 북한 스스로의 안보 불안감과 외교적 고립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해소해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공화당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북한의 핵포기가 끝난 다음 제공하는 보상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것을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도록 하는 대북 인센티브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북·미 외교관계 개설의 사전 단계인 연락사무소 개설을 북측의 비핵화 이행을 위한 인센티브로 활용할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실제로 오바마와 절친한 루가 상원의원이 제안했던 넌-루가(Nunn-Lugar) 방식으로 핵무기를 해체하는 경우 지금의 뉴욕 채널만으로는 상호 소통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 관여(engagement)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경제적·사회적 교류 심화는 미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의 채널과 수단을 증가시켜 인권 문제 등 다른 대북정책 목표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마도 이 같은 정책 변화들을 북한의 핵문제뿐 아니라 경제·미사일·인권·외교 문제 등 모든 현안 이슈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마스터플랜에 담아 6자회담의 틀에 연계시켜 이행해 나가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미국이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인 자세로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려 하는 경우 우리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다. 개인적인 희망은 이러한 대세를 거스르기보다는 오히려 한 발 앞장서 주도해 나갔으면 한다. 오바마는 북한 문제가 미국의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로 보며, 부시 정부의 대북 무대화·무관여 정책이 북한의 핵탄두 보유 숫자만 늘려준 실패한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따라서 설령 한국이나 일본이 반대한다 해도 스스로의 입장을 강하게 밀고나갈 확률이 크다. 그렇기에 과거 대북협상을 둘러싼 김영삼-클린턴 정부 간의 갈등과 혼선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내정치 문제다. 좌우로 갈려 우리끼리 하는 집안싸움을 중단하게 하고 새로운 담론을 주도하면서 더 크게 모든 정파와 국민을 품어내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미국 및 세계정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훌쩍 뛰어넘어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리더십이 긴요하다. 이를 통해 미국의 대선 결과를 우리 민족사의 숙원을 풀어내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윤영관 서울대·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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