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APEC회의 정상들 입은 '바통'제작 이은일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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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번 마닐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18개국 정상들의.유니폼'은 필리핀 전통의상 바롱.
모시처럼 까실까실한 질감의 흰색 실크에 각기 다른 기하학적 무늬가 수놓인 이 독특한 의상을 만든 주인공은 다름아닌 한국인이은일(李銀一.38.사진)씨다.
그는 필리핀 정착 11년만에 현지에서.실크의 왕'이란 호칭을얻은 닐리노실크사의 사장.
하지만 정작 본사와의 전화인터뷰에 응한 李씨 자신은“실크회사사장보다는.장인'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한다.
실크사업에 뛰어든 90년이후 돈벌이보다 신개념의 실크 개발에열을 올려왔기 때문이다.
이번 APEC회의때 선보인 바롱만해도 실크 90%에 파인애플섬유 10%를 섞어 李씨가 직접 개발한 신종 실크로 만들어졌다.바나나잎.마닐라삼.구리에 이르기까지 李씨는 상상가능한 모든 소재를 실크와 배합,10여종의 실크섬유를 탄생시키 는.산파'노릇을 해냈다.
“사실 저는 필리핀이나 실크,어느 것과도 별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서울고 졸업후 신학대학을 다녔으니까요.아시아를 무대로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에 필리핀국립대 관광학과로 유학길에 나선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李씨는 대학 졸업후 우연히 모 한국제사회사의 지사장으로 입사하게 된다.실크의 매력에이끌린 것은 바로 그때.
풍부한 노동력.누에를 기르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진 필리핀에서한국인 특유의 장인기질을 발휘,실크사업에 승부를 걸어보자는 결심이 섰다.그길로 자본금 6천여만원으로 닐리노실크사를 세웠다.
이후 李씨의 실크에 대한 열정은 필리핀을 넘어 세계의 주목을끈다.1년에 두세차례씩 여는 섬유전시회에 파리며 밀라노에서 바이어들이 몰려왔다.한국 디자이너 이영희씨,미국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 도너 카란도 그의 고객이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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