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에 지친 현대인의 정신적 고향 인도로 가는길 붐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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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집트는 사라졌네.그리스는 그 위대함을 잃었지.로마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졌지만 인도의 위대함은 아직도 남아있다네.’ 인도 시인 이크발의 조국찬가는 자화자찬이랄 수도 있다.그러나 “인류가 생활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모든 인간이 이 지상에 하나의 쉴 장소를 발견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도다”라는 프랑스 시인 로맹 롤랑의 찬사,“우파니샤드(인도의 경전)는 인류 최고 지혜의 산물이니 이것이야말로 곧 인류의 신앙이 될 것이다”는 독일 철학자 쇼펜하워의 전망에 이르면 누구나 인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관계기사 38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의 시인 류시화씨는 요즘 인도 몸살을 앓고 있다.10년째 매년 인도를 다녀오면서 인도에 관한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펴내기도 했던 그는 지난달에도 인도에서 히말라야·티베트쪽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해발 5천5백m 고산지대에서 산소결핍증으로 쓰러졌다.체중이 급속히 줄어들어 한달만에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한 그는 아직 와병중이다.하지만 몸이 낫는대로 다시 인도로 가기 위해 1월중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다.

인도행 비행기표를 얻기는 쉽지 않다.인도로 가는 길이 붐비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13일 영남대 박물관팀이 미술사·문화사에 대한 관심에서 인도로 떠났다.도서출판 한길사는 95년부터 인도에 대한 시민강좌 ‘인도를 찾는 사람들’을 매달 한번씩 열어왔는데 1월22일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인도 역사문화기행’ 동행자들을 모으고 있다.인도전문 여행업체인 혜초여행사의 경우 “지난 91년 처음 인도여행상품이 나올 당시 한해 1백명에 불과했던 것이 이달에만 1천명,다음달엔 3천명에 이를 전망”이라고 밝힐 정도다.

삶과 죽음,원시와 현대,그리고 히말라야 빙설과 열대사막이 공존하는 인도는 실로 신선한 충격이기에 충분하다.그래서 인도는 한번 갔다와서는 안되는 곳이다.갔다온 사람들은 다시 가고싶어 한다.방사선과 전문의 임현담씨는 다음달중 네번째 인도에 관한 책을 출간할 예정인데 책이 나오면 곧바로 다시 인도로 떠난다.

그는 90년 인도를 처음 찾은 이후 매년 한달씩 인도를 다녀와야만 한해를 보낼 힘을 얻는다고 한다.그가 처음 인도를 가고자한 것은 그의 직업 때문이다.방사선 전문의이기에 말기 암환자들을 자주 대했고 그럴 때마다 죽음 앞에서 삶을 회의해야만 했다.그는 그 해답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는 인도에서 찾기로 했다.그는 스스로 ‘인도에 발목을 잡혔다’고 표현한다.90년 죽음에 짓눌린 허무주의자로 찾아간 인도는 그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그가 삶의 의미를 되찾은 곳은 인도의 신화가 흐르는 갠지스강이었다.갠지스가 시작되는 히말라야의 강고트리는 지형 자체부터 신비스런 힌두의 성지.소의 혀처럼 길쭉하게 튀어나온 빙하 밑에서 얼음덩어리가 뒤섞인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강이 시작된다.해발 3천4백m의 고도인지라 한여름에도 냉기가 돌며,사방은 히말라야의 설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산아래 갠지스가 굽어흘러가는 주변에는 삼나무가 울창하다.

곳곳에 고행하는 수행자가 가부좌를 틀고 있고 이들의 설법을 들으러온 순례객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다.근처 동굴이나 바위에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죽음을 맞으며,주검을 본 사람은 죽은 자의 옷을 벗겨 근처 바위에 걸어둠으로써 풍장(비와 바람에 시체가 썩어 없어지게 방치해두는 장례법)을 돕는다.아무런 두려움이나 슬픔도 없이.

그곳에서 죽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며,곧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그것이 인도인의 철학이자 종교다.죽음은 삶의 또다른 형태,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윤회사상을 배운 것이다.이후 임씨는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를 보고 스스로 회의하지 않았으며,나아가 환자에게 죽음을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곤 한다.

인도는 창작을 하는 문인들,특히 개인적 경험차원의 소재발굴이 필요한 젊은 작가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다.작가들중 일찍 인도를 다녀오고 그 인상을 강하게 글로 남긴 사람은 여류소설가 강석경씨.그녀는 89년 인도를 다녀와 쓴 ‘인도기행’에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인도를 꿈꾸어왔다.…그 땅에서 다양한 삶들을 접하면서 내 의식의 눈도 크게 열렸다’고 썼다.

이어 그녀는 다시 인도에 가 2년간 여행하고 온뒤 ‘인도로 간 또또’라는 장편동화를 썼다.최근엔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라사는 티베트의 수도)는 장편을 8년만에 내놓으면서 “이젠 구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듯하다”고 토로했다.

젊은 평론가 조병준씨는 최근 세번째 인도여행에서 돌아왔는데 그는 캘커타에 머무르는 동안 테레사수녀가 운영하는 행려병자 수용소에서 환자들을 뒷바라지하는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조씨 역시 곧 인도로 다시 갈 예정이다.

소설가 구효서씨는 94년 다른 동료 문인들과 같이 인도의 갠지스강가를 다녀와선 “구역질나는 광경에 질렸다”며 고개를 가로젓다가는 최근 “한번 더 속이 뒤집어지는 정화(淨化)의 경험을 하고 싶다”며 인도행을 계획하고 있다.소설가 채영주씨는 지난 91년말 두달간 다녀왔는데 다시 몇달간 다녀올 준비를 하고 있다.채씨는 젊은 문인들의 인도행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생각해온 것들을 몽땅 뒤엎는 충격이 있기에 그곳에 간다”고 말한다.

인도가 서구인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이미 60년대부터 서구인들이 인도를 찾기 시작했으며 요즘도 인도의 큰 사원에는 수백명의 유럽인들이 명상과 수행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거룡(동국대 인도철학과 강사)씨는 “인도는 인류 정신사의 보고다.물질문명의 한계를 본 사람,물질적 욕구가 충족된 사람들은 정신세계를 찾아 인도로 간다.60년대 유럽인,80년대 일본인에 이어 90년대 한국인이 물질문명속에 잃어버린 정신세계를 찾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씨는 이어 “인도를 너무 신비하게 볼 필요는 없다.그곳에는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물질적으로 부족한 삶이 궁핍으로 보일 수도 있고,정신적 여유로 여겨질 수도 있으며,체념이나 달관으로 다가서기도 한다.중요한 것은 편견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봐야한다는 점이다”고 덧붙였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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