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불가능한 ‘아주 나쁜’ 어느 광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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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34면

보수주의자로 유명했던 전 미국 연방 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는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떤 상품의 완전한 생산 금지 권한은 의회에 주어져 있는데, 광고 등 마케팅 수단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는 옥외 광고 규제 등 담배의 판매 방식을 제한한 법률에 대한 위헌 판결과 관련된 논평이다. 위헌 결정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었는데, 렌퀴스트는 공중의 이익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광고를 제한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광고에 대한 제한은 있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발언(political speech)과 상업적 발언(commercial speech)은 다르게 취급되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이 유난히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막대한 비용을 퍼붓는 광고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TV 광고의 사전 심의 제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지만 대중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광고는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광고 관련 규제가 너무 심하다는 주장도 있고, 너무 느슨하여 ‘나쁜’ 광고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주장도 있다.

규제가 필요한 ‘나쁜’ 광고라 하면 허위·과장 광고가 대표적이고, 선정적·폭력적·반사회적이어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광고도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이런 범주에 속하지 않는, 따라서 규제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광고 중에도 ‘아주 나쁜’ 광고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문제의 광고는 최근 TV에 방영되고 있는 모 생명보험사 광고다. ‘생애 설계의 완성-세월이 흘러도 당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라는 메인 카피를 사용하며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진 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아들’ 편에서 젊은 아버지는 자장면을 주문하는 아들에게 탕수육을 시켜주고, 늙은 아버지는 삼겹살을 주문하는 아들에게 꽃등심을 시켜주며 호탕하게 웃는다. ‘딸’ 편에서는 젊은 아버지와 늙은 아버지가 새 옷을 사 달라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물론 두 아버지는 시차가 존재할 뿐 같은 인물이다.

광고가 뭘 말하려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겠다. 늙어서도 자녀들에게 기분대로 베풀면서 살려면 자기네 보험에 가입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광고가 대단히 잘못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이 광고는 부모의 책임을 지나치게 확대한다. 심하게 말하면 부모의 역할을 단지 ‘돈 버는 기계’로 규정하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이미 너무 많은 상황에서 우리 청소년이 이런 광고에 세뇌되어 성인이 된 후에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빠~” 하고 외치게 될까 봐 걱정스럽다. 먼 훗날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청소년이 꽃등심이나 예쁜 드레스를 사 주지 못하는 부모는 존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봐 걱정스럽다.

부모들에게도 큰 스트레스를 준다. 꽃등심과 드레스를 사줄 형편이 안 되는 늙은 부모들은 이 광고를 보며 부끄러워하란 말인가? 아무리 허리띠를 더 졸라매도 그 보험에 가입할 형편이 안 되는 젊은 부모들은 ‘생애 설계의 완성’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인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희생하며 살아왔거나 살고 있는 부모들의 마음을 왜 불편하게 하는가?

나는 거의 틀림없이 이 광고가 주된 타깃으로 삼고 있는 연령층에 속해 있는데, 주변의 내 또래들은 대부분 이 광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주제넘은 이야기이기는 하나 상품을 더 판매하기 위해서라도 광고 내용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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