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변화·통합·희망 외치며 새로 태어나는데 한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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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메시지다. 미국 대륙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흥분에 들떠 있다. 이제 미국호는 거대한 선회(旋回)를 준비 중이다. 30여 년 보수 시대에서 진보 시대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사회시장경제 체제로, 또 미국 일방주의에서 다자주의 외교로 향하고 있다.

눈을 한반도로 돌리면 전혀 다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변화보다는 교착이, 통합보다는 분열이, 희망이 아닌 냉소가 저변에 흐른다.

7일 하루 여의도의 모습도 그랬다. “올 보이콧이란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 박진 한나라당 의원은 씁쓸한 듯 말했다. 민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을 외통위에 상정하는 건 물론 공청회 개최 또한 거부키로 한 걸 전하면서다.

그는 “민주당은 (지난해) 한·미 FTA가 비준될 때 여당”이라며 “정상적인 처리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국회에 다시 한·미 FTA란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기 시작했다.

“시장에선 재수 없다고 하더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선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이같이 말했다. ‘국민학교 5학년에도 못 미치는 장관’이란 표현을 썼다. 본회의장은 전날에 이어 다시 고함과 삿대질로 가득 찼다.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대 이준웅(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세계 최강국의 리더십 변화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자명하다”며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리더십 차원에서나 정책 면에서 우리가 얼마나 수동적으로 대비했는지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일곱 난쟁이의 리더십”=교착·분열·냉소를 만들어 내는 건 결국 정치 리더십이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오바마 당선인은 희망을 주지만 (우리의 정치 리더십은) 국민을 냉소적으로 만들어 왔다”며 “비전을 주지 못하고 일곱 난쟁이처럼 매번 같은 이야기만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5% 증세’처럼 갈등 유발적 주장을 하면서도 동시에 통합적으로 끌어갈 능력이 필요한데 (우리는) 분열적이지 않은 의제도 더 분열적으로 간다”며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실제 우리의 분열 구조는 다층적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수도권과 지방,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가 맞선다. 갈등의 골이 깊다 보니 제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심하다. 미국 듀크대에 체류 중인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미국에선 제도권 정치에서 문제를 해결하지만 우리는 그게 안 돼 촛불집회나 온라인 정치가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도 크다. 매사를 이념 정쟁화하는 리더십이 문제란 지적이다. 이준웅 교수는 “(여야가) 서로 떠넘기기만 한다”고 말했다. 신구 권력도 마찬가지다. 인수인계 과정을 둘러싼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이 그 예다. 부시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 간의 협조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오바마·이명박 차이 존재”=오마바 당선인과 이명박 정부의 이념·정책이 다른데 충분히 대비가 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도 컸다.

한동대 김준형(국제어문학부) 교수는 “외교 및 경제 정책에서 양자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며 “이명박 정부가 한·미 간 이념 차이와 전통의 한·미 동맹 최우선 정책 사이에서 쉽지 않은 선택에 직면하게 됐다”고 봤다. 그는 “외교적으론 대북 강경책을 고집하지 말고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앙대 장훈(정치외교학) 교수는 "미국 외교 정책의 목차에 따라 양국 간에 앞으로 아프가니스탄 파병과 북한 핵, FTA 등이 매트릭스(행렬)로 얽힐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푸는 중요한 요소가 양국 대통령의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고정애·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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