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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from : 신경숙 ‘엄마, 미안해 …’ to : 세상의 모든 이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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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창비, 300쪽, 1만원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엄마를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했다.”

‘나’도 아닌 ‘너’란 익숙지 않은 2인칭이 눈에 턱 걸린다. 그러나 몇 장 넘기고 나면 ‘너’는 더 이상 어색한 무엇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나’가 소설의 ‘너’와 고스란히 겹쳐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울 사는 둘째 네로 향하던 길. 지하철은 아버지만 태운 채 출발한다. 왜 평소처럼 자식 중 누군가가 마중을 나가지 않았던가, 왜, 왜. 자식들은 처음엔 서로를 탓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결국 손가락은 자신에게 향할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인식한다.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고서야 엄마가 어떤 존재였는지 곱씹고 되씹는다.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120쪽)

기억 속 엄마는 씩씩한 사람이었다. 아귀떼처럼 밥상머리에 달려드는 자식들을 거둬 먹이느라 종일 부엌일에 매달렸다.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대신해 지붕도 고치고 문풍지도 발랐다. 누룩을 띄워 내다 팔고, 논일이며 밭일이며 다달이 돌아오는 종가 제사 치레까지 한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해치우느라 아플 틈조차 없었다. 아니, 엄마란 아파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자신은 문맹이면서도 자식들을 작가, 약사, 잘 나가는 회사원으로 키워놨다. 그러면서도 장남에겐 동생들 학업을 떠맡겨서, 딸에겐 공부 시키느라 너무 일찍 외지로 보내 미안하단 마음만 품던 사람. 자식에게 모진 소리랍시고 해 봐야 “배운 사람은 다 그러냐!”(63쪽)였던 엄마. 소설가 신경숙의 어머니가 투영된 ‘엄마’이지만, 세상 모든 ‘너’의 엄마이자 ‘당신’의 아내이기도 한 여인.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 있다고.”(272쪽)

소설을 읽는 내내 삶은 계란을 소금도 뿌리지 않고 삼킨 듯 목구멍이 조여온다. 그런 느낌을 피해 갈 수 있는 죄 없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 엄마가 화자로 등장하는 제 4장은 이렇게 끝난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254쪽). 작가는 엄마에게 ‘나’란 1인칭을 부여했다. 그동안 소설 속 엄마들이 누구 하나 당당히 말하지 못했던 ‘나’를 말이다. 결국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지가 궁금해 마지막 장을 넘겨보진 말길. 엄마를 찾느냐 마느냐는 이 작품에서 전혀 중요치 않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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