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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리포트>物價상승률 물밑 조정 한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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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이 역사에 남을지도 모를 대개혁을 시작했다.성공하면 아마30년대 대공황의 수렁에서 미국을 건져낸 뉴딜 정책에 버금가는위업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그만큼 파장이 엄청날 개혁을 정교한 논리를 바탕으로 작은 곳에서 시작했으며 전혀 서두르지 않고 사회적합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를 하나씩 밟아나간다는 점이다.
개혁의 시동을 건 것은 이달초 마이클 보스킨 교수(스탠퍼드대)등 5명의 경제학자들이 상원 재정위원회에 낸.소비자물가지수(CPI) 정확도'에 대한 한편의 보고서다.〈본지 12월12일자28면 참조〉 소비자물가 상승률(현재 3% 수준)이 실제보다 1.1%포인트 정도 높다는게 그 요지.이 결론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본격적인 노령화 사회의 개막을 앞두고 미국은 선진국 공통의.성인병'을 완치는 아니라도 상당부분 치유할 수 있다.재정적자라는 만성질환도 몇년안에 대부분 극복하게 된다.물가상승률이낮아지면 그를 감안해 책정되는 사회보장비용이 줄어들고 세금은 올라가는 셈이 돼 앞으로 5년간 무려 2천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가 나오자 각 정당이나 이익단체등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은퇴자협회등에서는 당장“지수개편에 손을 대기만 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상원에 경고했다.물가상승률 조정으로 손해를 보게생겼으니 발끈하는게 당연하다.공화.민주당은 다같 이“행정부가 일을 추진하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지수개편은 옳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먼저 나서서 표를 깎이지 않겠다는 정치인다운 반응이다.행정부측은“내년 예산에는 지수개편이 고려되지 않는다”고 했다.때가 되면 지수개편을 할 수도 있다는,상당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결국 언론이 나섰다.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을 통해“대통령이나서라”고 촉구했다.클린턴은 역사에 남을 일을 해야하며 옳은 일을 하는 정치는 결국 평가받는다는 논리였다.“재정적자를 줄이려는 숫자 농간”이라는 비논리적 억지주장은 어디 에서도 들리지않았다. 이번 논쟁은 사실 이미 2년전부터 차근차근 준비돼왔다.94년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의회증언을 통해 CPI가 실제보다 높게 잡힌다고 처음 주장하자 상원이 학계에 연구를 위촉,2년을 기다린 끝에 보고서를 받은 것이다 .
밀실작업의 결과를 하루 아침에 전격 시행하고 구호부터 거창하게 내거는 우리의 개혁과 미국의 그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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