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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디어 기업 나올 수 있게 싹 키우고 영양분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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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은 첨단 미디어 시장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이를 발휘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부터 선진화해야 합니다.” 한국언론학회의 새 학회장인 김정기(54·신문방송학) 한양대 교수의 지적이다. 지난달 10일 신임 학회장이 된 그는 취임 뒤 첫 인터뷰를 3일 중앙일보와 하면서 “각종 규제로 무조건 발목을 잡을 게 아니라 미디어 기업의 활동 공간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나올 수 있게 싹을 틔우고 영양분을 주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국언론학회는 회원 1300여 명의 매머드급 학회다. 언론 관련 학술·연구 단체로는 국내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 가입한 언론학자 수로만 따지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요즘 이런 언론학회를 바라보는 주변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크다. ‘미디어 빅뱅’이라 할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한국 미디어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비전을 이들에게서 기대하기 때문이다. 언론 문제를 둘러싼 뿌리 깊은 정치 공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학자들의 몫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 학회장도 책임과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디지털 혁명에 걸맞은 새 정책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며 “국가와 국민, 사회 각 조직 간에 진정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소통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도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학회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언론학회장 입장에서 한국 사회와 미디어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아날로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변화의 종착역을 예측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미디어를 예로 들면 이미 전통 미디어 시대를 떠나 멀티미디어 시대로 들어섰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양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방송·통신의 융합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해 산업과 공익의 조화, 매체 겸영의 범위, 인터넷 정보의 신뢰와 실명제 확대 등이 그것이다. 언론학회는 마침 이런 이슈들을 연구 영역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사명감이 필요하다. 책임을 피하지 않고 디지털시대 우리가 어떤 패러다임을 가져야 하는지 집중 연구할 생각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 조직 간에 소통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그 문제를 극복하는 데도 힘을 보태겠다.”

-디지털혁명과 관련해 많은 이들이 전통 미디어, 특히 신문의 위기를 말하는데.

“난 개인적으로 신문 애독자다. 주변에도 신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솔직히 위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역설적으로 말해 신문의 위기론은 적어도 20년은 된 것 같다. 일부 비판이 있지만 신문은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의 징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선 광고의 위기다. 광고 파이는 크게 늘지 않는데 수많은 신종 매체가 등장해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위기는 인터넷뉴스 서비스의 확장이나 뉴스 아카이브(기록·보관) 사업, 신문 콘텐트의 저작권 보호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음으로써 극복해야 한다. 신문산업이 종이에 머물지 않고 디지털 정보산업으로 가는 게 세계적 트렌드다. 한국이 이를 주도할 수 있다고 본다. 신문 경영자들이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근본적인 저널리즘의 위기다. 신문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무엇보다 전문성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신문 저널리즘이 ‘수준 높은 전문직, 신성한 전문직’의 위상을 차지하고, 그런 가치관을 전파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전문성을 높이면서 넓게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추구나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하면 신문의 신뢰는 자연적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일류 국가엔 일류 신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일류 신문의 가치는 무엇인가.

“신문의 발전은 민주주의 성숙도에 정비례한다. 좋은 신문이 나오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모두 일류 국가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우 솔직히 정치·경제·사회 각 부분에서 가야 할 길이 멀다. 일류 신문은 좀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저널리즘 입장에서 본다면 공정성과 신뢰 등 기본을 꾸준히 지켜가는 게 필요하다. 신문의 기본 성향과 관계없이 내용만 가지고 누구나 설득할 수 있을 때 저널리즘의 권위가 만들어진다. 권력 감시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그것이 포기할 수 없는 신문의 숙명이다. 이를 위해 한국 신문에서 탐사 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심층성과 설득력을 높일 수 있을 때 신문은 다른 미디어들을 뛰어넘는 ‘격조 있는 매체’로 자리 잡게 된다. 건전한 여론을 잘 반영하기 위해 독자들을 신문 제작에 참여시키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한다. 참여·공유·개방의 가치를 실현하는 ‘웹 2.0 방식’을 신문사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다. 그러면 우린 어느 순간 일류 신문을 갖게 될 것이다.”

-‘미디어 빅뱅이란 말이 보통명사로 쓰일 정도로 미디어 산업이 격변기를 맞고 있다. 미래 산업을 전망한다면.

“동종·이종 미디어가 속속 출현하고 있다. 전통 미디어와 뉴미디어 간에는 평화로운 공존도 있지만 치열한 경쟁도 존재한다. 합종연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기술·정책·소프트웨어가 모두 뭉치고 흩어지니 빅뱅이라 부를 수 있겠다. 중요한 점은 기존 미디어는 외국에서 수입했지만, 새로운 미디어는 대한민국이 이끌어 가고 우리가 첨단을 달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디어 현상이 다른 나라의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고 있다. 세계도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새로운 빅뱅의 시대를 잘 요리해 미디어의 우주를 한국에서 만들어 낼 때다. 지금은 미디어의 카오스(혼돈) 시대지만 코스모스(새 질서를 의미)를 잘 만든다면 우린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활동 공간을 미디어에 마련해 주는 일이다. 한 예로 현재 기술적 융합에 따라 미디어가 복합·다각 경영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새로운 미디어 경영이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사회적 합의와 다원성을 지켜가는 절차는 필요하다.”

-신문·방송 겸영에 대한 소신은.

“학회장 입장에서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학회 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전한 토론을 위해 의견이 갈리는 건 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지나친 공영성과 공익성 논리로 미리부터 (미디어 기업에)활동 공간을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 그렇다면 토론을 거쳐 학회가 하나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는가.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많은 이에게 공유되고 도움이 되는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만약 학문 공동체로서 충분한 논의와 결론을 거쳤다고 판단되면 당당하게 의견의 실행도 정부 측에 요구할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한국에서도 미국의 타임워너 같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미디어 그룹이 나와야 국제경쟁력도 키우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

“뉴미디어 시대를 선도할 한국형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적 상황이 새로운 기술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이 기회를 우린 활용해야 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한다면 우선 법과 제도가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법 한두 개를 고쳐 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한류부터 시작해 통신 표준 등 세계에서 앞서 나가는 부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출현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문을 걸어닫을 게 아니라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싹을 키우고 영양분을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9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방송·통신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국제경쟁력이 있는 세계적 수준의 미디어가 출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통위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형 미디어 그룹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타임워너의 경우 연 매출액이 50조원이며 9만6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학회장으로서 구체적인 목표를 듣고 싶다.

“우선 그간 언론학회 활동을 성찰하는 게 필요하다. 앞으로 학문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갖춰나갈 것이다. 불필요한 예산 집행은 줄이되 꼭 필요한 연구와 학술 행사에 주력하겠다. 양적인 팽창이 아니라 질적인 연구물을 내놓을 수 있게 시스템을 바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회원이 참여하는 ‘네트워크 학회’를 구현할 생각이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받은 연구 분야나 비산업적인 연구분야에도 지원을 늘리겠다.”

-학교·언론 현장의 교류에 대한 생각은.

“현재 전국 80여 개 대학에 2만8000여 명의 학생이 신문·방송 관련 학과에 다니고 있다. 이들의 교육과 취업을 위한 노력을 학회 차원에서 하겠다. 언론 현장과의 긴밀한 교류가 절실한 시점이다. 학자들은 10년만 지나면 언론 현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은 일상에 바빠 큰 흐름을 놓치는 수가 있다. 이 점에서 학자와 언론인의 상호 교류를 통한 시너지효과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언론학회장으로서 앞으로 학교와 미디어 산업이 같이 발전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 사회를 발전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글=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김정기 신임 언론학회장=강릉고와 한양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트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언론학회장 임기는 내년 10월까지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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