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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아리영 아버지와 길례는 일본으로 떠났다.도쿄에서 살며 무당을하고 있다는 길례의 생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신혼여행'이라기는 면구스러운 뒤늦은.재혼여행'을 그들은 어머니와의 재회란 명분 아래 마음놓고 떠난 것같았다.
공항 로비에서 환하게 웃으며 을희에게 절하는 길례의 얼굴은 윤기로 반짝이고 있었다.흠씬 사랑받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다.
애욕(愛慾)의 바다에서 맘껏 헤엄친 여자의 눈부심.아리영 아버지와의 충족된 밤살이를 엿보게 했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알뜰히 사랑받고,사랑하는 이와 한몸이 되는열락(悅樂)의 밤을 오붓이 지낼 수 있는 여자.그런 여자이기를바라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극히 기본적인 인간생활이 지켜지기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맺어져서는 안될 성격의 남녀끼리 결혼한 탓일까.
서로 양보하고 위하는 따스함에 인색한 탓일까.아니면 전혀 다른문화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갈 등의 결과인가. .선녀와 나무꾼'민화는,문화환경이 다른 세계에서 자란 남녀간의 만남을 가혹하게 결론지어 보여주고 있다.
…하늘나라에서 사는 선녀들은 금강산 연못에 내려와 제각기 날개옷을 벗어 목욕하고 있었다.
이 황홀한 모습을 엿보고 있던 나무꾼은 그중 한 날개옷을 훔쳐 감추었다.
목욕을 마치고나자 선녀들은 각각 날개옷을 찾아입고 하늘나라로날아 올랐으나 날개옷을 잃은 선녀만이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나무꾼이 다가가 그 선녀를 집으로 데려왔다.둘은 부부가 되어살며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
이젠 상관없겠지 마음놓은 나무꾼은 실은 내가 날개옷을 훔쳤노라며 도로 꺼내 보여주었다.일찍이 선녀였던 아내는 그 자리에서날개옷을 두르더니 곧장 하늘나라로 올라가버리고 말았다.한 아이는 등에 업고,두 아이는 두 팔에 하나씩 안은 채….
선녀는 끝내 선녀일 수밖에 없었고,나무꾼은 끝내 나무꾼일 수밖에 없었다.그 사나이의 아이를 셋씩이나 낳고도 생장과정의 차이는 메워지지 않았다.
문화적 환경이 다른 세계에서 자란 남녀의 합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 민화는 상징적으로 일러준다.
남 보기엔 이상적인 만남처럼 보였던 아리영과 그녀의 전남편도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가 이혼하자마자 연상의 여교사와 재혼하여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은 을희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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