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세대 가수들 '까만안경'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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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언제부턴가.까만 안경'이 TV쇼 무대를 점령하고 있다.댄스그룹은 거의 전부,신세대 솔로가수들도 예외가 없다.쇼무대 뿐만 아니다.퀴즈프로 등에 초대돼서도 까만 안경을 쓰고 말을 한다.
이 춤추는 까만 안경들을 보며.쉰세대'는 대체로 혀를 차고 같은 또래들은 그것이 그들 존재의 기호인듯 오히려 무덤덤하다.
그들은 제 얼굴을 가리는 까만 안경을,그것도 실내 스튜디오에서왜 꼭 쓰는 것일까.
“멋있잖아요.하지만 혁준이는 눈이 안좋기 때문에 조명빛을 가리느라 꼭 쓰죠.”(아이돌) “개성이죠.이젠 선글라스를 써야 마음이 편해져요.”(성진우) “눈이 자주 충혈되는 편이어서 자주 쓰게 됩니다.무대에서요?폼나잖아요.”(김정민) “의상에 따라 달라집니다.드레시한 옷을 입을 땐 쓰지 않죠.대신 댄스곡을부를땐 밀리터리룩을 하고 반드시 까만 안경을 씁니다.”(박미경매니저) 까만 안경을 쓰는 이유가 자못 다양하지만 멋을 낸다는점에선 일치한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연출하고 있는 KBS 박해선PD는“얼굴의 단점을 가리고 또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많이 쓰는 것같다”고 말하고“공연할 때 쓰는 것은 모르지만 이야기할 때도 계속 쓰고 있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다.
무조건 까만 안경만 쓴다고 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를 잘이용하는 연예인이 김건모다.선글라스와 알맹이없는 안경,또 맨얼굴을 요리조리 섞어가며 쇼의 분위기를 리드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브라운관에 까만 안경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올해초로 추정된다.재키.오드리 헵번.맥아더 스타일등 미국의 복고 패션이 소개되면서 댄스그룹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시작했다.이젠 스키용 고글과 얼굴의 반이상을 가리는 스 포츠용이 등장한지도 오래됐다.
까만 안경을 쓰면 심리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인간은 눈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눈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감을 이룬다.까만 안경은 이 통로를 차단해 버린다.다른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주면서 동시에 자신을 속박하는 그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불안.우울등 정신적 혼란으로 괴로워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액세서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5.16후박정희 전대통령의 까만 안경을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세상이 집단중심에서 개성중심으로 변하면서 남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추세도 이런 현상을 설명해준다.광선요법 권위자인 마이클 터먼(뉴욕주립대 정신의학과)박사는 “선글라스를 쓰는 행위는.눈맞춤에 의존하는'상호작용을 줄이려는 바람과 현실도피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세대가수들이 전세대나 대체로 맨얼굴로 노래하는 외국가수들보다 현실도피적인 성향인가.그럴 것같진 않다.그렇다면 지금의 까만 안경 돌풍은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려다 역설적으로 집단적 주술과 같은 동일화 현상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39)박사는 “까만 안경이 느는 것은 모자쓴 사람이 느는 것과 같은 맥락의 유행이다.대중앞에서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는 연예인들에게 까만 안경이 좋은 도피막이겠지만 일반인들이 애용할 경우 자칫 정신건강과 대인관 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까만 안경으로 멋을 내고 동시에 편안함을 느끼는 젊은 가수들과 그들 또래의 신세대.이들에게 까만 안경은 이제.개성'이 아닌.부적'이 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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