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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대통령의 경제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경제가 어려우니까 별생각이 다 든다.잠시 79년 3공말기로 가보자.보안사령관 전두환(全斗煥)은 재무관료 박봉환(朴鳳煥)을은밀히 불러 경제과외공부를 청했다.경제를 몰라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가정교사 박봉환은 고생막심이었다..울며 겨자먹기'로 열심히 가르쳤지만 워낙 학생의 기본실력이 달려 애를 먹었다.“히틀러는인플레의 양아들”이니“자본주의 붕괴는 인플레가 묘약”이라는 식으로 별의별 비유를 다 동원해가며 인플레 해악을 설명해갔다.물가안정이 최대 당면과제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82년 李.張사채파동이 있었던 여름,全대통령은 진해휴가중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모아놓고 한바탕 경제강의를 펼쳤다.대뜸“MV=PT가 무언지 아느냐”는 대통령의 질문에기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많이 풀린다고 물가가 오르는게 아니야.돈의 속도도 함께 봐야지.” 김재익(金在益)경제수석으로부터 배운.화폐교환방정식'에 대한 지식을 대통령은 기자들을 상대로“요건 몰랐지”하며한껏 뽐냈다.어쨌거나 재임중 그는 경제공부에 매우 열심이었다.
써준대로 안 읽고,어디서건 마음내키는대로 실력자랑을 해대는 바람에 주위 참모들을 아슬아슬하게 만들기 일쑤였다.집권 후반에는최고의 경제전문가임을 자처,진짜전문가(?)들을 골치썩이는 해프닝도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후임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전혀 딴판이었다.경제가 좋았을 때였을뿐 아니라,한마디로 경제에 지식도,관심도 없었다.써주는대로 읽었다.복잡한 보고는 아예 사절이었다.경제정책에 관한한 단한건도 자신이 주도한 것이 없었다.어떤 일이 닥 쳐도“의논껏 알아서 잘 해보세요”가 전부였다.
경제장관들의 청와대출입은 보고하러 가는 것이지,지시를 받아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매사를 직접 나서서 우지끈 뚝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전임자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지금은 두사람똑같이 법정에 서 있지만 경제문제에 관한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전임대통령들과후일 어떻게 비교될까.솔직히 말해 길을 막고 물어봐도 金대통령을 두고.경제 대통령'이라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그의트레이드 마크는 역시 정치쪽이다.뭐니뭐니 해도 그는.민주 대통령'이나.칼국수 대통령'또는.재임중에 한푼의 돈도 받지 않은 청렴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 민주투사였던 그가 대통령이 되면 복잡하고 골치아픈 경제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가 애당초 관심사였다.전임 盧대통령이야 경제가 워낙 좋았을 때였으니 벌어놓은 것을 까먹으면서 묻혀 넘어갔지만,하필 내리막길 경제를 맡은 金대통령은 처 지가 달랐다.뜻밖의 엔고(高) 덕분에 한때 반짝했을뿐 경제는 우려했던대로악화일로를 걸어왔다.경제부총리가 평균 10개월이 멀다하고 바뀌었으니 알만한 일이다.
드디어 金대통령도 최근.10% 경쟁력 높이기'라는 슬로건 아래 특유의 결연한 의지를 피력하고 나섰다.
“내년도 국제수지적자를 올해의 절반수준으로 줄여라”“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경제를 회생시키겠다.”그러나 모처럼 밝힌 대통령의 결심에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신통찮은 것같다.실기(失機)탓일까,불신(不信)탓일까.金정부의 경제정책은 희한 하게도 집권막판에 부산을 떨고 있는 셈이다.더구나 선거철에 경제구조개혁을 외치고 있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의구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부터라도 대통령 스스로가 정말 마음 독하게 먹고 인기없는 정책을 강력하게 펴야 할텐데,선거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 과연 그럴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경제가 꼬일수록 대통령의 리더십과 결단력이 절실 한 법이다.
(경제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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