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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등 잔학행위 戰犯 규정-美,前일본군 入國금지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미 법무부가 3일 내린.일본인 전범 용의자 16명에 대한 입국금지'는 줄곧 침략전쟁에 대한 속죄에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지않았던 일본엔 상당히 충격적인 조치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미국에 입국하려는 모든 외국인들은 비자 신청서를 쓸 때마다 2차대전의 나치만행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했다. 바로“당신은 독일 나치 정부 또는 동맹국 정부의 조종으로…사람을 박해하거나 계획적인 대량학살을 하는 데 직간접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미 비자신청서엔 지금까지 일본의 잔학행위에 대한 가담여부는 묻지도 않았고 따라서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그러나 법무부의 이번 조치로 일본의 잔학행위에의 개입 여부를 묻는 질문이추가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시 말해 “당신은 일본 제국군대의 조종으로…정신대(挺身隊)또는 생체(生體)실험등의 잔학행위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등의 문구가 미 비자신청서에 오를 날이 가까워 왔다는 얘기다.
사실 종전후 정신대등과 관련해 재판을 받은 일본인은 극소수다.네덜란드 정부가 인도네시아에서 자국(自國) 여성을 학대한 혐의로 소수의 일본인을 상대로 재판을 진행한 것이 전부다.그러나이번 미 법무부의 조치는 비록 재판은 아니지만 전범의 대상을.
유럽에서의 잔학행위'에서.아시아에서의 잔학행위'로 넓혔다는데 의미가 있다.2차 대전중 저질러진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그간 국내에서든,국외에서든.축소지향'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미 법무부의 이번 조치는 일 본 정부의 그런 노력들을 무력화시킨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번 조치에는 석연치 않은 점도 없지 않다.우선 미국은 생체실험용 731부대의 존재를 종전 직후 알았으면서도 그 실험 결과를 얻는 대가로 관계자들을 전범처리하지 않았다.종군위안부 문제도 새삼스럽게 안 일이 아니다.
또 일본 정부가 느닷없이 이 문제로 뒤통수를 맞은 것도 아니다.니컬러스 번스 미 국무부대변인은 이 조치를 취하기 앞서 수개월전에 일본 정부에 충분히 귀띔해왔다고 밝히고 있다.그만큼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조코를 내린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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