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공 축구’하고, 호박 이고 달리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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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주민들이 논바닥에서 짚으로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2일 낮 전남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마을 앞 들판.

벼를 베고 난 박병언(57) 전 이장의 논에서 사람들이 새끼를 말아 만든 짚공을 좇아 우루르 몰려다녔다. 골도 볏짚 다발 2개를 3m가량 간격을 두고 세워 놓은 게 전부였다. 40~60대 남녀 뒤섞여 ‘동네 축구’를 하는데, 헛발질을 하고 엎어지기 일쑤였다. 논 가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은 “뭣 하는 겨” “잘 좀 혀 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손뼉을 치며 웃고 좋아했다.

“벼 농사 끝내고 더 추워지기 전에 날을 받아 한바탕 재미지게 노는 거지. 이기고 지고가 뭐 대수인가.”

이백선(64)씨는 “논바닥이 울퉁불퉁한 데다 짚 공이라서 차도 멀리 나가지 않아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와도 우리와 같을 것이다”며 웃었다.

돈지리는 1993년 대전으로 팔려 갔던 하얀색 진돗개가 7개월 만에 원래 주인인 이씨의 어머니네 집으로 되돌아온와 화제가 됐던 마을. 이 돈지리 사람들이 가을철마다 벼 수확을 마친 뒤 논에서 논배미축제를 즐기고 있다. 올해로 벌써 22년째다.

2일 축제에 모인 사람은 500여명. 돈지리 주민에다 서울·광주에 나가 사는 사람 50여명이 가세하고,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구경을 왔다.

짚공 차기는 초창기에는 마을 6개 반이 한 팀씩 만들어 토너먼트로 시합을 벌였었다. 이제는 마을 전체가 두 패로 나뉘어 한 경기만을 치른다. 주민의 수가 크게 줄고 그마저 대부분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주요 경기는 갓 수확한 노란색 호박을 머리 위에 얹고 60m 가량을 뛰는 호박 이고 달리기. 서옥례(75)씨는 “젊은 시절엔 물동이도 이고 뛰어다녔다. 지금도 자신있지만 젊은 사람들을 위해 살살 뛰어 줬다”고 말했다.

남자 2명과 여자 3명이 한 팀을 이룬 제기차기 대회와 어린이들의 새끼 꼬기 시합도 했다. 상품 또한 검정쌀을 주는 등 시골 잔치답다.

점심 식사 후 북놀이와 의신들노래 등으로 흥을 돋울 때는 술에 얼큰해진 사람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장 이기서(54)씨는 “옛날에 촌에서 놀던 대로 노는 것인데, 이젠 이웃 마을은 물론 외지인들까지 구경하러 오며, 마을에서 음식을 준비해 대접한다”고 말했다.

이날 마을에선 돼지 4마리를 잡고, 떡은 쌀 180㎏ 분이나 뺐으며, 막걸리를 20말이나 준비했다. 젊은 사람들이 마을 앞 냇가에서 잡은 붕어 등으로 국을 큰 솥으로 6개나 끓이기도 했다.

마을 청년회장인 박규영(43)씨는 “전날 저녁부터 시작해 행사 당일 밤 노래자랑 및 뒤풀이 때까지 온 동네 사람이 함께 먹고 노는 게 전통이 됐다”고 말했다. 

이해석 기자, 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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