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세로읽기>길 떠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먼 길은 왜 슬프고 아름다운가.길은 연인처럼 스며와 사랑의 감정을 솟게 만든다.가닿기 힘든 아득함과 가닿고 싶은 갈망사이에서 가슴저리게 한다.어떤 시장기,애달픈 그리움으로 온몸을 예민하게 한다.아름다운 길은 앤서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가 주연한 펠리니의 영화.길'에서 봤고,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가 기면발작증으로 쓰러진 그 향수짙은 길을 잊지 못한다.그리고 경주의감포가도가 너울거리고 정선처럼 굽이굽이 물결치는 우리나라의 길들이 눈물나게 한다.
얼마전에 찾은 정선의 마른 길들은 비통하게 엎드려 울고 있는사람처럼 보였다.따뜻한 이불을 덮어주고 슬픔을 달래주고 싶은 길,쓸쓸히 휘날리는 길이었다.마분지같은 바람 한 장씩 날아가면길에 엎드려 귀를 대고 내게 오는 임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임 그리워 정 그리워 못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실아실에 춥고 춥거든 내 품안으로 들구 비개가 낮구 낮거든 그대팔을 비지.' 이 예쁜 우리 말,우리 가락에 나는 반했다.사무치는 아리랑의 자손임을 뿌듯해하며 여랑마을 저녁빛이 내 눈을 파랗게 물들이던 모습을 떠올린다.
길은 강물따라 생기고 길따라 사람들이 흘러간다.길에 대한 많은 사진중에.US 285,뉴멕시코'를 나는 사랑한다.강력한 실존의 순간을 시적인 영상으로 찍은 그의 작품은 현대 사진의 뿌리이자 전형이다.프랭크가 본 현실과 그가 창조한 프레임은 인습에 길든 기존 사진에 대한 반란이고 부정의 미학이다.현대인의 소외와 고립감,낭만과 허무,고독과 절망 사이에서 흐느끼는 그의작품은 현대인의 마음에 깊은 동요를 준다.갇혀 있던 마음을 풀어 야생의 대지에 풀어놓는다.광대한 저수지처럼 조용히 솟구치고꿈틀대고 출렁거리고 아름다운 장송곡이 흐르듯 슬프다.
차가 없는 도로,내가 보고 싶은 길의 모습이다.사람이 제대로살려면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듯 길이 길로서 살아 있으려면가끔은 텅 비어야 하지 않을까.이 비어있음은 얼마나 사람의 가슴을 채우는가.부귀공명이란 세상의 훈장도 조만 간 닳아 없어질향기짙은 비누임을 일깨워준다.우리의 사람이 이 길처럼 군더더기없이 청빈하길 바란다.정말 모두가 청빈한 삶을 살려고만 한다면심각한 생태계의 문제와 많은 다른 문제도 해결 조짐이 보이리라. 사람의 영혼은 머무르지 못하고 늘 떠나는 자다.때로 참담하도록 답답한 나날을 견디기 위해 위안이 될 무언가를 찾는다.사랑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어떤 향기,몸과 마음이 합일하는 어떤 순간,아 내가 이곳에 살아있다고 열정과 경이에 차서 황홀해하는순간을 만나기 위해 헤매는지도 모른다.
〈시인〉 신현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