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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범의 행복 산부인과] 폐경, 세 번째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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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폐경을 주제로 한 ‘메노포즈’라는 뮤지컬이 흥행했다.

메노포즈(menopose)는 ‘폐경’이라는 뜻이다. 폐경을 주제로 무대 위 배우들은 모든 것을 속시원하게 털어놓는다. 주인공은 “내 기억력은 3초, 핸드폰은 냉장고 속에, 폐경이 나를 괴롭혀~”라고 말해 관객의 호응을 얻기도 하고,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노랫말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연출하기도 한다.

무대 속 ‘폐경’이라는 주제는 인생에서 신나는 이벤트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난 폐경의 진짜 주인공들은 어떨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이 비오듯 해요” “불안하고 초조해 잠들기 어려워요” “여기저기 아프고, 남편이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고 우울해요…”. 증상을 털어놓는 이들 여성의 고통은 듣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노년기로 접어드는 47세 전후의 몇 년을 갱년기라고 한다. 여성은 이 시기에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고 생리가 불규칙해지면서 차츰 폐경을 맞는다.

폐경기 증상이 모든 여성에게 똑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중년 여성의 약 10%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폐경기를 보내고, 30~40%는 심각한 증상 없이 지나가지만, 20%는 우울증·무력감에 시달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 안면홍조·불면증·신경과민·성교통·우울증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증상은 3~5년간 지속되지만 심한 경우 10년 이상 끌기도 한다. 치료는 호르몬 보충요법이 많이 쓰이고 있다.

호르몬 요법(HRT)은 폐경기 이후에 모자라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을 보충해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이다.

호르몬 요법은 최소 2~3년간은 받아야 한다. 초기에는 종아리가 저리거나 유방통·두통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2~3개월 지나면 없어진다. 하지만 이후에도 좋아지지 않으면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다만 간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유방암·자궁내막암을 가진 여성은 의사와 상담하며 신중하게 투여해야 한다.

최근에는 용량을 반 이하로 줄인 저용량 호르몬 요법이 권장되고 있다. 호르몬 요법에 대해 좋다, 안 좋다 말이 많지만 ‘사용해서 얻어질 이익이 손실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의료계의 일반적 견해다.

만약 심혈관질환으로 호르몬 사용을 금기시하는 여성이라면 다른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담배를 끊는다거나, 고지방·고칼로리 음식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할 경우 콜레스테롤 저하제와 항고혈압제도 사용할 수 있다.

여성에게 폐경은 세 번째 탄생이다. 첫 번째는 엄마 배 속으로부터의 탄생, 두 번째는 임신이 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초경, 그리고 마지막이 폐경이다. 평균수명 80세를 사는 장수 시대. 전문의의 도움을 받으면 인생의 3분의 1을 보낼 폐경을 연극무대처럼 신나는 이벤트로 만들 수있다.

강순범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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