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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탐방기 ⑤ 의재 허백련과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무등산에서 예술을 말하다

중앙일보

입력

비엔날레 다섯 번째 무대는 무등산. 이곳에는 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을 기리는 의재미술관이 있는데, 비엔날레 전시 무대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 무등산 기슭에서 의재가 남긴 오래 전의 먹향을 쫓고, 현대미술의 향연인 비엔날레를 감상할 수 있다는 기쁨이 있다. 거기에 하나 더 하자면 가을 산의 정취에 취해 스스로 그림 같은 풍경이 주인공까지 될 수 있다는 것.

의재미술관 전경


비엔날레 본관인 중외공원에서 차량으로 약 사 십 여분 달려가면 무등산 밑자락에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서부터 약 30분 가량 한적하게 걷다 보면 산자락에 숨어있는 의재미술관이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는 20분 정도 걸린다. 건축가는 미술관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표현하려고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 스타일이 모던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느낌은 자연스럽고 포근하다. 듣자 하니 등산로의 지형적 요건을 세세하게 고려하여 친환경적 공법으로 세웠단다. 건축가 조성룡이 건축한 의재미술관은 2001년 제10회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바 있다.

춘설헌

의재미술관은 앞서 언급한 대로 남종화의 대가인 허백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의재문화재단이 건립한 갤러리다. 의재 허백련은 광복직후부터 타계할 때까지 이곳 무등산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미술관의 규모는 약 6,000㎡ 정도로 지상 2층, 지하 1층, 전시실과 다도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비엔날레 본관무대와 비교하면 무척 아담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사군자와 서예 등 허백련의 각 시기별 대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여태 세간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60여 점을 비롯해 낙관과 화실 현판, 사진과 편지, 각종 유품 등이 현재 전시실에 나와 있다. 흔치 않은 기회니 남종화에 조회가 깊은 사람이라면 다른 곳 다 제쳐두고 무등산부터 찾을 일이다.

허백련작품


1891년, 진도에서 태어난 의재 허백련 선생은 20세기 우리나라 남종화의 대가(大家)로 손꼽히는데 선생이 완성한 거의 대부분의 명작은 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그의 화실 춘설헌에서 그려졌다. 광주시민들은 의재를 남다르게 기리며 모시는데 이는 선생이 생전에 시서화(詩書畵)나 연진회(鍊眞會)와 같은 문화조직을 만들어 광주가 예향(藝鄕)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주로 산수를 즐겼던 의재 선생은 그림 외에도 다방면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업적으로는 1945년 일제해방 이후 죽어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시골마다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한 발자취다. 선생은 사람과 흙과 하늘을 똑같이 사모하며 경배하겠노라 맹세한 후 살아가는 내내 실천했다고 한다. 또한 선생은 다도를 사랑하여 무등산 곳곳에 차밭을 만들어 재배했다. 그리하여 재배된 차를 ‘춘설차(春雪茶)’라 불렀다. 이 차를 마시고 청명해진 정신으로 안팎을 살피면 다시는 일제치하와 같은 치욕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선생은 자주 말했다. 선생의 차문화 보급 이면에는 두 번 다시 일제치하의 치욕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눈물겨운 각오가 배어 있었던 것이다. 춘설 녹차 밭으로 나가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미술관 뒤편으로 향하면 된다. 미술관 뒤편으로는 무등산 춘설 녹차 밭이 있고, 그 앞쪽으로 선생의 작업실이 있다. 해마다 많은 방문객들이 등산을 하며 이곳에 들러 의재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선생의 묘소에 가보려면 증심사 계곡을 건너 춘설헌과의 갈림길을 찾으면 된다. 이 길에서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아름답게 봉분이 솟아 있는 의재의 묘소가 보인다. 생전에 무등산을 사랑했던 선생은 지금도 높은 산자락에서 무등산의 차밭이며 사람들을 평화롭게 바라보고 있다. 그 자리에 서서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의재 선생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떳떳하고 굳세다는 의미를 가진 의재(毅齋) 선생의 호는 한학자 무정 정만조 선생이 지은 것이다. 무정 선생은 세속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속세인들을 깊은 가슴으로 보듬을 줄 아는 의재를 특별히 여겼다고 전해진다.
지난 1974년 3월에는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부부가 의재의 작업실 춘설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게오르규는 의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난초는 동양인의 마음과 같다는데, 대하기 까다롭다는 뜻인지요?" 의재 선생은 이에 "아니지요. 조용하고 깊이가 있다는 뜻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한편 선생은 게오르규의 <잠수함 속의 흰 토끼>를 언급하며 그 흰 토끼와 동양의 난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잠수함 속의 토끼는 산소가 적어지면 사람보다 먼저 죽는다는 내용의 작품인데, 이는 사회가 병들면 시인이 가장 먼저 병들어버리고 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춘설헌에 앉아 두 대가가 나눈 대화를 상기해보자면 지금 우리시대의 시인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비엔날레 여정이긴 하지만, 의재미술관에서는 누구보다 의재의 삶과 작품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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