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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벼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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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벼슬도 싫다만은 명예도 싫어/정든 땅 언덕길에 초가집 짓고…”로 시작하는 노래 ‘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아는 사람이 많다. 세속적 삶의 때를 털어버리려는 마음의 자태가 돋보이는 대중가요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신정하(申靖夏)도 정쟁에 말려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비슷한 시조를 남긴다.

“벼슬이 귀타한들 이 내 몸에 비길쏘냐/건려(蹇驢: 다리 저는 나귀)를 바삐 몰아 고산(故山)으로 돌아오니/급한 비 한 줄기에 출진행장(出塵行裝) 씻는구나”라고 했다. 초라한 나귀 등에 실려 고향으로 돌아오다 갑자기 내리는 비에 티끌 묻었던 옷을 씻어 내는 마음의 홀가분함을 그렸다.

벼슬은 세속적 욕망이 버무려진 대상이다. 부귀와 영화를 함께 얻을 수 있는 자리니 누가 그 자리를 마다할까. 그러나 벼슬의 길인 환로(宦路)는 풍파가 가득한 곳. 정략적인 목적에 따라 옳고 그름을 쉬이 왜곡해야 하고, 그런 룰에 맞추다 제가 지녔던 품격마저 깎아먹는다.

맹자(孟子)는 이를 경계했다. 사람이 제 스스로 닦아서 얻어낼 수 있는 높은 품격을 하늘이 내린 벼슬, 천작(天爵)이라고 했다. 그에 비해 세속적 욕망에 따라 얻는 벼슬자리를 인작(人爵)이라고 했다. 하늘 벼슬자리는 사람의 고매한 품덕이다. 어짐과 꿋꿋함, 조화로움과 슬기로움의 인의예지(仁義禮智)다. 맹자는 “요즘 사람들은 벼슬을 얻기 위해 품덕을 닦다가…벼슬을 얻은 뒤에는 아예 그 품덕마저 버린다”고 개탄했다.

하늘 벼슬자리, 품덕은 사람됨의 근본이다. 그에 비해 사람 벼슬자리는 가지에 불과하다. 맹자는 근본을 허물고 세속의 권세만을 추구하는 보잘 것없는 인간 군상을 비판한 셈이다.

한국 사회의 벼슬아치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국회에서 벌어지는 막말 공방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해 “대통령의 졸개냐”고 묻는 국회의원, 그를 참지 못해 애꿎은 기자에게 욕설이나 해대는 장관은 막상막하. 개인적 수양이 모자라 정치판 자체를 흐리는 요즘의 한국 정치인들 모두 맹자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게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정략의 틀에 갇혀 품격 없이 막말이나 해댔던 국회의원, 체통 없이 처신했던 공직자들. 이 가을에 제 소양을 높일 수 있는 교양서 한 권 읽기를 권한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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