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MovieTV] 연기쟁이 한채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8면

아름답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대중 앞에 얼굴을 내밀고, 평가받아야 하는 직업군엔 더욱 그렇다. 연예인이 대표적이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남보다 50m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시합이 중장거리일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때론 외모가 개인의 능력과 성향에 한계를 지어 버린다. 완벽한 외모를 갖춘 배우가 처음 반짝하다 세인의 기억에서 밀려나는 건 타고난 이점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뇌쇄적인 눈빛도 자꾸 보면 식상한 법이다.

한채영(24). 그에겐 늘 깎은 듯한 외모의 소유자란 말이 따라다닌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강렬한 외모는 물론이고 몸매에 관한 한 국내 최고라는 평을 받는다. 2000년 바비인형의 홍보대사로 선정되고 일본의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의 모델로 발탁되면서 일찌감치 '살인 몸매'라는 별칭을 얻었다. 바비인형의 비현실적인 몸매는 그 앞에서 현실이 된다. 동양의 고전미와 서구적인 세련미를 겸비했다며 할리우드까지 군침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굉장히 노력 중이거든요. '바비인형'을 앞세우지 말아 주세요. 연기력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혹평도 좋아요. 자, '북경 내 사랑'이야기나 할까요?"

그는 최근 출연한 영화('해적 디스코왕 되다''와일드 카드')를 통해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은 CF(블랙버드V.비비안. 하우젠…) 등에 비친 그의 화려한 모습을 우선 떠올린다. 한채영이 영화를 잠시 떠나 다시 드라마에 도전한 것도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수의 시청자 앞에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란다.

지난 10일 방송을 시작한 한.중 합작 드라마 '북경 내 사랑'이 그 무대. 한국과 중국의 첫 합작 드라마라는 사실뿐 아니라 중국 전국 방송 CCTV의 프라임 타임대에 방송된다는 점 때문에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 여주인공인 그는 여기서 다국적 기업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다.

"정말 긴 여정이었어요. 조급했으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거예요.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다 생각하고 뚝심으로 버텼죠."

한채영은 2002년 가을 '북경 내 사랑'에 합류했다. 드라마의 80%는 중국에서 촬영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더 큰 세상을 향한 의욕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그해 중국에 불어닥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파동으로 촬영이 취소됐다. 많은 연기자가 촬영 지연을 이유로 작품을 떠났다. 주변에선 그에게도 떠날 것을 종용했다. 한채영은 그러나 의리를 지켰다. 3~4편의 영화와 의류.이동통신 등 4~5개의 CF 제의를 포기해 버렸다.

"연기자가 꼭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명 한명 떠날 때마다 동요됐던 건 사실이지만 꾹 참으면 제게 더 큰 보람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어요."

어렵게 시작한 촬영 자체도 고난이었다. 우선 중국어 대사 비율이 50%나 됐다.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는 대본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완전 사전 제작으로 이뤄지는 터라 시간이 변수였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1회분을 찍었다가 20회분을 찍기도 해 대본 전체에 대한 확실한 맥락을 꿰뚫고 있어야 했다.

"너무 바빠 놀러 다니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하지만 수확이 있었어요. 그동안 영화와 방송('가을동화' '아버지와 아들' '정')을 하면서 힘들다는 느낌밖에 없었거든요. 이번에 '재미'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결심했죠. 급하게 달리지 말고 즐기며 천천히 가자고요."

그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즐겁다. 외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한 탓인지 솔직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 이번에도 '북경 내 사랑' 대본에 나온 수영복 장면을 보고 "불필요한 것 아니냐"며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연기 외에 다른 분야로 외도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엔 "저 노래 못해요"라는 대답이 0.5초 안에 튀어나온다. 궁금했던 영화배우 장동건과의 '스캔들'에 대해서도 당당하다. 그는 각종 인터뷰에서 장동건이 이상형이라고 밝혔고, 장동건도 "한채영이라면 나도 좋다"고 답변한 것으로 보도됐다. "하하하, 스캔들 아니에요. 팬으로서 좋아하는 거예요. 어렸을 적부터 오빠의 팬이었어요. 잘 생겼잖아요. 하지만 제가 '남자'로 언급한 건 절대 아니에요."

데뷔 당시부터 영화.방송계의 주목을 끌어온 한채영. '사스'를 넘어 시청자 앞에 다시 선 그가 연기력으로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화제의 드라마 '북경 내 사랑'은 그녀가 한류(韓流)를 지나 더 큰 무대로 갈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글=이상복 기자<jizh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hyundong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