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리스트>외국인 관광가이드 나선 캐나다출신 교수 스티브 로니

바로 당신이 낯선 이방 도시 서울의 외로운 여행객이 됐다고 상상해보라．말 설고 물 선 남의 동네 어디가 안그럴까마는 도심 고층호텔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은 막막하기 짝이 없다．멀리 눈에 띄는 표지라야 63빌딩이나 남산 정도．어느 골목에서 ５백년 고도（古都）의 향기를 찾을 수 있을지 가늠이 쉽지 않다．단체아닌 나홀로 여행자를 위한 관광상품에 인색하고 영어로 의사소통 역시 수월치 않은 곳．그래서 서울은 뚱한 콘크리트 덩어리，교통 체증과 뿌연 매연밖에 볼 것 없는 도시에 그치고 만다． 이런 서울에 캐나다 국적의 스티브 로니（43·천안외국어전문대 교수）는 마법을 불어넣는 사람이다．주말이면 미스터 미스터리로 변신，한 떼의 외국인을 이끌고 관광안내책자엔 결코 나오지 않는 서울 구석구석에서 ５천년 역사와 문화의 신비를 찾아나서기 벌써 １년 남짓．무료로，도보로，영어로 진행되는 이 ‘서울신비찾기(Seoul Mystery Tour)’는 이 땅에서 나서 자란 사람조차 곧잘 감탄시킨다． “처음 참가한 게 토요일 오후7시 3호선 독립문역에서 출발하는 투어였어요．먼저 서대문형무소 자리에서 ３·１운동 관련 설명을 하고나더니 인왕산을 오르더라고요．이 밤중에 웬 산인가 싶었는데 국사당을 찾아가는 거였죠．”

무속과 불교에 대한 로니교수의 설명이 ‘장난이 아니다’싶어 꾸준한 참가자가 된 한국인 사업가 김진태씨의 말이다． 역사와 문화의 ‘신비’를 찾아나서는 체험은 강남 한복판，２호선 삼성역에서 출발하는 투어도 예외가 아니다．‘삼성（三成）’이란 지명의 유래에서 시작된 ‘３’의 완결성에 대한 설명이 삼릉공원에선 왕가의 묘를 예로，봉은사에선 불교 사찰의 건물배치를 예로 이어진다． 이처럼 ‘서울신비찾기’에는 매회 주제가 있다．사직공원에서 출발，광화문까지 가는 투어에선 풍수（風水）에 대한 설명이，성균관∼창경궁∼서울대병원∼이화장으로 이어지는 대학로 투어에선 유학（儒學）에 대한 설명이 핵심이다．한국의 전형적인 불교 사찰을 방문하는 투어도 있다．섣불리 도심 한복판의 이름난 절을 들먹이지 말기를．그는 낙성대 부근의 관음사를 ‘전형적인’ 것으로 여기는 자신의 안목을 조심스레 풀어낸다.

이쯤되면 미스터리는 로니 자신으로 옮겨간다. 대학1학년때 부전공처럼 들은 '세계종교'강좌에 매료됐고, 94년 여름 한국에 온 이래 '한국불교의 상징세계'를 주제로 미 시러큐스대 박사논문을 준비중이란 설명이 이어진다. '서울 신비 찾기'는 논문준비를 위해 답사에 답사를 거듭하는 그를 본 한 친구의 권유로 시작됐다. 그에게 서울은 '무진장한 자원'을 지닌 곳. '서울 신비 찾기'가 로니교수처럼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큰 사람만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일요일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는 로니교수를 시작으로 미국.영국.호주.인도.한국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채식주의'가 주제인 이날 투어는 걷는(walking)대신 실내에 앉아(seating) 먹는(eating)형태. 영자신문에, 외국인클럽에 미리 나붙는 공고에는 특별히 '자기나라의 독특한 채식요리를 가져오라'는 쉽지않은 주문이 딸려있었다.

투어장소인 국제연등불교센터에 도착하자 20명 남짓한 참가자들은 직접 만든 샌드위치에서부터 호텔 베이커리에서 산 파운드케이크까지 형편껏 마련한 '채식'을 주섬주섬 거내놨다. 풍부한 지식과 좋은 목청과 유머감각, 뛰어난 여행안내자로서 3박자를 갖춘 로니교수는 달력을 펼쳐들고 한국의 절기를 서러명하다 한마디 던진다. "사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요? 그럼 여기 개 먹는 날이 있습니다. 첫번째 개먹는 날,두번째 개먹는 날..."

미처 웃을 준비를 못한 참가자들이 뒤늦게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참석자들 사이의 서먹한 분위기가 한결 가신다. 불교 뿐 아니라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에서 공자와 맹자까지 아우르는 채식주의의 기원에 대한 로니교수의 강연이 이날의 '신비'로 남겨져 있는 사이 참석자들은 포묵, 폴란드의 옥수수샐러드, 영국의 치즈.양파샌드위치에 손을 뻗으면서 맛나고 친근한 서울을 맛보기 시작한다.

<이후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