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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보고세로읽기>세기말,전생,초합리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하늘엔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미확인비행물체(UFO)들이 날아다니고 티베트 지하엔 3.5차원쯤에서 사는 원지구인들의 수도가 있다고 한다.일부 극성파들은 UFO 승무원들과 악수하기 위해 높은 안데스산에 올라가 마냥 기다린다.그들은 화성에서 생명의 흔적이 발견되자 “이제부터는 우주촌 시대”라며 환호했다.
영화 “유혹의 선”이나 소설 “타나토노트”는 사후 세계의 탐험가들을 소개한다.죽음.영계.전생.내생의 정보가 쏟아졌다.서양의 대중은 6세기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윤회설을 금지한 후근 1천5백년만에 드러내놓고 윤회설을 추종하고 있다.한국은 오히려 서양을 쫓아간다.19세기 미국의 에드거 케이시가 오늘날 한국에 환생했는지 서울의 한 양의사도 환자의 전생을 회상시켜 병을 고치는 방법을 개발했다.미래에 대한 열기는 미래학자와 점쟁이가 거의 동등하게 이끌고 있다.
오늘날 동서양의 점쟁이들은 고위급 정치경제인들에게 학자들 만큼이나 영향력을 미친다.한국의 심진송에게 높은 분들의 상담 신청이 줄을 이었듯이 내로라하는 프랑스의 고위층들이 수정구슬로 점을 치는 미모의 야겔 디디에게 몰린다.이 때문에 정신과 지식의 제도권이라 할 학계.언론계.종교계는 혼란에 빠져 있다.언론의 사설이나 시사 다큐멘터리는 .세기말 현상'.미신'.비합리'등의 용어로 강하게 비판하지만 그 옆의 사실 기사나 오락 프로그램에선 잔뜩 치켜세운다.그들은 양쪽 다 상품이 된다는 것을 안다. 합리성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학계는 외형상 비판 일변도다.그러나 대학에서도 새 건물을 지으면 고사를 지내고 적지 않은 학자들이 자신의 취직이나 자식 결혼과 관련해서는 미신과 역술을 벗지 못한다.종교계는 거의 양극화돼 있다.2000 년께 지구의 대격변이 있으리라는 예언에 토대를 둔 종교가 있는가 하면 .뉴 에이지'의 .뉴'자만 나와도 사탄처럼 경계하는 종교도있다. 오늘날 지구는 합리주의 문명의 벼랑에 서 있다.모험적인현대물리학이나 카오스 이론은 이미 그 벼랑을 건너 뛰어 버렸다.근대과학이 그토록 배제해왔던 우연성.주관성.비결정성.불확정성이 과학적 원리의 핵심부로 들어왔다.벼랑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비합리의 왕국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비합리의 왕국은 합리주의 제국의 식민지였을 뿐이다.합리성이라는 표층의식에 눌린 무의식이었다.그것이 제2차세계대전후 여기저기서 독립하려는움직임을 드러낸 것이다.합리주의자들은 역술이니 예언이니 하는 것이 오움 진리교나 휴거주의처럼 당사자들과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파멸에 관해서라면 합리주의도 죄과를 벗을 수 없다.20세기에 .과학적'이니 .합리적'이니 하는말을 내건 이데올로기 때 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타를 파멸했는가.UFO의 노예가 되는 것이 위험스러운 것처럼 편협한 합리주의의 노예가 되는 것도 위험스럽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우주 저 끝까지,그리고 전생과 미래까지 연관된 존재임을 알고 싶고,그것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신비현상에 대한 탐색은 그런 욕구의 발로다.합리주의적 맹신도,비합리적 맹신도 우리를 거기까지 안내하지 못한다.우리 의 지식과 정신이 근본적인 도전에 봉착했다는 것이 사태의 핵심이다.모험가들이 필요하다.합리주의 시대의 벼랑을 힘차게 건너 뛰어 초합리왕국을 건설하는 모험가들이.인간의식의 성장은 그들에게 달려 있다. ▶약력:57년생.서울대철학과卒.서강대 신문학 박사.문화평론가.평론집“와우” <문화평론가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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