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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외교와 국민감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본 외무성의 정면현관 뜰엔 청일(淸日)전쟁 당시의 외상 무쓰 무네미츠(陸奧宗光.1845~97)의 동상이 유일하게 서 있다.메이지(明治)개국 당시 서구(西歐)와 맺은 각종 불평등조약을 개정해 약소국 일본을 1급국가로 만든 장본인이 다.1백년이지난 지금도 그를 가장 빼어난 외교관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국내의 국수주의적 여론에 영합하지 않고 외교를 외교답게 이끈 선견성 때문이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지상명령으로 추진한 메이지시대,늘 일본외교의 발목을 잡은 것은 국민 다수를 차지했던 국수주의 여론이었다.세계정세 속에서 일본의 위치와 힘을 정확히 보기보다 우물안 안목으로 국제문제에 감정적 대응을 촉구하는 여 론에 맞선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무쓰의 지론은 국제간 상호의존성이 증대돼 주권국가의 국내문제와 국제문제의 구분이점점 어려워진 요즘 더욱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특히 북한 잠수함침투사건 이후의 한반도정세 전개를 둘러싼 국내와 국외의 현격한 시각차를 보면서 새삼 무쓰를 음미하게 된다.
최근 도쿄(東京)에선 “북한이 언제까지 협박.공갈외교를 할 것인가”에 못지 않게 “한국정부는 뭘 믿고 그렇게 강경일변도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사과및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한국의 대응과 보복을 거듭 선언하는 북한의 망나니식 대결은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부터 내는 보스니아사태처럼 한반도 문제를 자칫 변질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의 비상식과 벼랑끝외교를 익히 알고 있는 일본내 주류는 한국의 입장을 다른 나라에 비해 잘 이해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한국의 대응이 북한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미국과의 협조와 조율은 순탄할 것인가,한국내 여론과 국제정세의 갭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등이다. 우선,일본엔 북한이 명시적으로 한국측에 사과하기는 어려울것이란 판단이 지배적이다.김정일(金正日)정권이 잠수함사건 초기에 .피해자'운운하며 .보복'을 선언한 것이 사과를 어렵게 만든다고 본다.때문에 북한의 사과를 예상하는 한국 당 국자들의 발언은 별로 신용하지 않는 편이다.오히려 한국의 대북(對北)압박외교 배경에 한국민의 대북감정 악화,미국의 북한접근과 유화자세에 대한 한국정부의 불만이 작용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다음,일본은 한국의 강경자세가 사태의 본질적 해결에 끼칠 영향을 다소 비관적으로 본다.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소프트랜딩을 당면 외교목표로 삼고 있다.소프트랜딩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지원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동 결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북.미 제네바합의의 이행에 달려있다.때문에 미국.일본 모두 소프트랜딩을 백지화하는 한국과의 공동보조엔 한계가 있으며,한국측의 대응 때문에 지역정세가 불안정해지는 일을바라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의 현정부가 아웅산사태이후의 5공(共)정부처럼 대처할 수 없겠는지 탐색한다.이미 한국이 북한에 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내 한반도전문가들의 상식이다.북한의 최근 대남(對南)전략은 그들 체제와 정권유지용 성 격이 앞서있고,적화통일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이며,북한에 의한 한국내 체제전복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 논거다.
또 일본내엔 북한의 조기붕괴가 현실화되지 않는한 남북한 교차승인은 불가피하므로 한국이 이를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흐름이 있고,한국정부가 제의한 4자회담은 공개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실현가능성을 극히 낮게 본다.
미국이 북한을 그들의 영향아래 두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한한국의 .배짱'이 어디까지 통할지,한국민의 감정과 관계국들의 이해타산은 조화될 수 있을 것인지… 모두 국제정세의 냉철한 분석을 필요로 하고 있다.외교의 본질은 국익을 건 싸움이다.지식.통찰력.설득력을 결집시킨 진검승부(眞劍勝負)이기 때문에 더 어렵고 묘미가 있다.
(일본총국장) 全 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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