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도 주판은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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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최근 주산·암산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주산이 아이들의 두뇌 발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유치원 때 주산을 배웠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가면 떠들지 않고 선생님 입을 쳐다봅니다. 주산을 통해서 길러진 집중력 때문이죠."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주산활용 수학교육사 김선태 지도교수의 말이다. 주판 알은 작아서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튕겨야 한다. 그래야 알이 잘못 올라가거나 내려지지 않는다. 호산(수를 부르는 것)을 할 때는 선생님이 불러주는 숫자를 유심히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요하다. 일단 호산에 익숙해지면 머릿속에 주판의 모습을 그려 넣고 셈을 할 수 있어 암산이 빨라진다. 이것이 주산 암산의 원리다.

교과과정 개편으로 주산 과목이 사라지고 일부 학교에서 특기적성 과목으로만 교육되다 보니 주판을 튕기는 아이들의 수는 점점 줄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도 주산은 아직 살아있다. 28일 서울 PJ호텔에서는 주산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세계주산심산연합회 총회가 열렸다. 세계주산심산연합회 한국위원회 황호중 회장은 상임이사 9개국(중국·미국·대만·말레이시아 등) 대표를 초청해 각국의 주산암산 교육현황과 발전방향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우리나라 교육계 관계자 및 주산수학계 단체와 임원·교사 등 120여명이 참석했다.

요즘 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주산이 두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다. 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주산은 치매예방 차원에서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김선태 지도교수는 "수를 생각하면서 손으로 주판을 만지고 놀다 보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이미 일본이나 중국에서 관련 논문이 발표된 바가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다른 나라들의 경우 주산암산 수학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40년 된 국제주산수학연합회 외에 최근 세계주산심산연합회가 다시 생겼다. 일본이나 중국 등은 초등학교 수학교과서에 주산 단원을 싣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교과 과정에 주산이 포함돼 있지 않다. 김 교수는 “주산을 단순히 계산도구로 생각해 안타깝다”며 “눈으로 보고 만지고 수의 개념을 가르치는 데 주판보다 좋은 것은 없는데 다들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 달 8일에는 서울KBS 88체육관에서 주산수리셈과 국제주산수학연합회 한국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제6회 전국 어린이 주산암산경시대회’가 열린다. 전국 어린이 1500여명이 참가해 유치부와 초등부 저학년(1~2학년), 고학년(3~6학년)으로 나뉘어 치러질 예정이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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