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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공주의 환생 … 김연아, 그랑프리 1차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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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연아가 우아한 모습으로 빙판 위를 활주하고 있다. [에버렛(미국) AFP=연합뉴스]

 수많은 ‘세헤라자데(아라비안나이트 주인공)’가 은반을 스쳐갔다. 과거 미셸 콴(미국)은 파워풀한, 안도 미키(일본)는 섹시한 세헤라자데였다. ‘피겨요정’ 김연아(18·군포수리고)가 연기한 세헤라자데는 그 모두를 합쳐놓은 듯했다. 몸짓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쳤다. 연기는 서정적이었다. 요염함도 빠지지 않았다. 관중은 물론 심판까지도 그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김연아가 27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의 컴캐스트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그랑프리 1차대회(스케이트 아메리카) 프리스케이팅에서 123.95점을 받았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받은 69.50점까지 합계 193.45점으로 우승했다. 합계 172.53점을 받은 2위 나카노 유카리(일본)에게 20점 이상 앞섰다. 1차대회 우승으로 시즌의 첫 단추를 잘 끼운 김연아는 다음 달 6일 3차대회(차이나컵·중국 베이징)에 출전한다.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다=이번 대회에서 김연아는 쇼트 때 더블악셀(공중 2회전 반), 프리 때 트리플루프(공중 3회전), 싯스핀(앉은 자세로 제자리에서 회전)에서 실수를 했다. 그럼에도 높은 점수를 받아 우승했다. 비밀은 완벽한 기술 구사와 높은 예술 점수다. 김연아의 기술, 특히 점프 때 정확한 에지(스케이트 날) 사용은 ‘정석’으로 불린다. 이번 대회에서도 중계카메라는 김연아의 발을 클로즈업해 에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미국 NBC방송의 해설자 스콧 해밀턴은 “김연아의 공중회전은 완벽했고 에지나 다른 부분도 감점 요소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높은 예술 점수도 좋은 성적의 배경이다. 김연아는 동양인임에도 서양 선수 못지않게 팔다리가 길고 얼굴이 작다. 올 시즌에는 필라테스로 몸의 균형까지 잡았다. 그런 몸매에 풍부한 연기력으로 심판을 사로잡았다. 이지희 국제심판은 “심판도 사람이다. 예쁘게 연기하는 선수에게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게다가 김연아는 기복이 없다. 심판들은 경기 전 연습링크를 돌며 선수들의 컨디션을 살핀다. “연습 모습만 봐도 얼마나 준비했나 감이 온다”는 게 이 심판의 설명이다.

◆꿈의 200점 멀지 않았다=김연아는 지난 시즌부터 꾸준히 해온 유연성 훈련 덕분에 스파이럴(한쪽 다리를 들고 활주하는 기술)에서는 최고 수준인 레벨4를 받았다. 하지만 쇼트와 프리를 합쳐 6차례 스핀 중 5차례나 레벨3에 그쳤다. 자세가 높고 스피드가 줄어든 탓이다. 대회마다 반복되는 잔 실수도 여전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발견한 단점을 보완한다면 언제든 ‘꿈의 200점’도 가능하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올 시즌은) 심판에게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김연아가 잘 소화해낸다면 어느 해보다 좋은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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