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정성’ 이면 불황기 창업도 OK…대한민국 주부들 CEO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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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문정동에서 베트남쌀국수집 ‘호아센’을 운영하는 동연옥(51)씨는 22세, 26세 된 두 아들을 길러온 어머니다. 건설업을 하는 남편과 결혼해 30년간을 꼬박 전업주부로 지냈다. 그랬던 그가 올여름 ‘탈출’을 선언했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니 내 일을 찾아 의욕적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남편을 설득해 7월에 ‘일’을 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사장 일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한다. 주방장은 말없이 그만둬 버리고, 하수구는 또 왜 그리 자주 막히는지…. 그럼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전업주부 탈출 러시=주부들이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통계청의 지난해 말 조사에 따르면 2006년 전국 사업체 중 여성 대표의 비율은 36.9%. 전년에 비해 1.7%포인트 증가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생계형 창업이 대부분이지만 40, 50대 주부들이 가사와 육아에서 자유로워지며 자아실현 방법으로 창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 사는 안영선(43)씨가 그런 경우다.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었는데, 용기를 내지 못하던 차에 큰아들이 힘을 보태줬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 사춘기에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동생들은 제가 보살필게요”라는 말을 건넨 것이다. 그는 올 6월 집 근처에 ‘오송할매콩칼국수집’을 열었다. 요즘 짭짤한 순이익을 올린다.


◆주부 CEO로 우뚝 서다=뜨개질이 취미였던 송영예(39·사진)씨는 늘 자신의 특기를 살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이들(당시 4세와 6세)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집 안에서 할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100만원을 들여 전화기를 하나 더 놓고 스캐너 등을 사들인 뒤 1999년 본격적인 뜨개질 사업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송영예의 바늘 이야기’라는 브랜드로 가맹점을 모집했다. 현재는 가맹점 72개를 갖고 있다. 송씨처럼 자신만의 브랜드를 정착시키고 있는 주부 최고경영자(CEO)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오구환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전무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부 CEO가 가뭄에 콩 날 정도로 드물었지만 현재 협회에 등록된 브랜드의 10% 정도(20여 회사)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엄마의 마음과 정성으로=7월 노량진고시촌에서 테이크아웃 카페를 시작한 최송길(52)씨는 고시생들에게 또 다른 엄마다. 아들이 취업하고 시작한 일인데 아들·딸이 수백 명으로 늘었다. “한 손에는 책을 들고, 토스트와 음료를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들을 보면 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고 한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커피·생과일주스 가격과 세트 가격을 500원 낮췄다. 장사가 잘되는데 걱정도 있다. “자주 봐서 정이 드는 것보다는 빨리 합격해 안 나타나면 좋겠다”는 것이다.

서울 반포동에서 체험학습관 ‘씽크스퀘어’를 운영하는 최영아(39)씨. 결혼해 10년 동안 아이들 기르는 재미에 쏙 빠져 있었던 그 역시 지난해 인생의 다른 막을 올렸다.

그는 “엄마라는 조건을 110% 활용했다”고 말했다. 평소에 교육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2년 전 자녀를 등록시킨 창의력 증진 체험 프로그램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성공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다른 아이들도 제 아이 돌보듯 하면 됐다”고 말했다.

글=문병주, 사진=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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