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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모르는 택시기사 왜 많나 했더니…택시 시험 형식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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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문제: 참다운 봉사의 자세는?

정답: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생활.

지난 7일 서울 잠실의 교통회관에서 치러진 택시기사 자격시험에 나온 문제다. 시험은 지리 25문제, 운송서비스 15문제 등 80문항이 4지선다형으로 출제됐다.

문제 가운데는 수준 이하의 문제가 여럿 있었다. "승차거부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이미 승객을 태우고 있을 경우)" "운전자의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닌 것은? (주의력 집중은 운전에 좋지 않다는 생각)" 등이 그런 예다. "예술의 전당은 무슨 동에 있나? (서초동)" 등 지리 문제는 실제 운행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1990년 7월 도입된 시험이 이처럼 형식적이다 보니 합격자 가운데 '까막눈'이 많다.

회사원 정기준(37)씨는 최근 서울 삼성동에서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택시기사가 "타워팰리스가 뭐냐"고 반문해 길을 일일이 가르쳐줘야만 했다.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43)대표는 "택시 시험은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은 목적지에 빨리, 정확히 갈 수 있어야 택시 자격증을 딸 수 있다. 미국은 택시기사를 양성하는 학원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필기시험만 통과하면 자격증이 나온다.

시험을 주관하는 전국택시사업조합연합회 김명현(34)과장은 "택시회사가 기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인난이 심해질 우려가 있어 당장 시험체계를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택시경력 2년의 崔모(55)씨는 "택시기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수만명인데 구인난은 말도 안 된다"며 "기사에 대한 처우가 엉망인 것이 구인난과 택시서비스 질적 저하의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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