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쇄신 할 거면 당장 하고 안 할거면 안 한다 선언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연말이나 연초, 또는 늦어도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1주년이 되는 내년 2월 말을 목표로 한 전면적인 인적 쇄신론이 여권 핵심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와 내각의 주요 포스트에 개혁적이고 실천력 있는 인물들을 기용하거나, 기존 인물들의 자리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논의가 여권 핵심부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실천 내각’과 ‘3기 실천 청와대’ 등 ‘실천 정부’ 진용으로 집권 2년차 국정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게 논의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내 주요 포스트에 결단과 추진력을 지닌 인사들이 포함돼 있지 않다 보니 여권 전체의 의사 소통이나 개혁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게 논의의 출발점이다.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당·정·청이 따로 노는 듯한 모습을 보이거나 위기관리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도 이런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빗발치는 경제팀 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이를 외면하는 것과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지금 경제팀 경질을 건의할 만한 참모가 청와대 내에 누가 있느냐”는 비판이 청와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적 쇄신론의 방향이 당장 눈앞에 닥친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여권 내부를 친정 체제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주변에선 “뒤로 물러나 있던 이 대통령의 측근그룹이 재결집해 국정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2010년 지방선거와 당 대표 경선 등이 예정돼 있어 2009년 말부터는 차기 대선을 둘러싼 당내 헤게모니(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불붙을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내년 1년뿐이기 때문에 인적 역량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선 이미 이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하지만 일러야 올 연말에나 가동될 인적 쇄신 프로그램을 놓고 “현 상황의 위중함을 모르는 한가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여권 내부에선 적지 않다. “혹독한 경제위기 속에서 신뢰를 잃은 경제팀 하나 바꾸지 못하는 역량으로 어떻게 실천력 있는 인적 쇄신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또 이 같은 인적 개편론이 경제위기 극복보다는 ‘이명박 측근그룹’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발판으로만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될지 하루 뒤를 예상키 힘든 상황에서 연말, 또는 집권 1년을 기념하는 인적 쇄신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경제팀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지금 당장 인사를 단행,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팀을 교체할 뜻이 없다면 대통령이 아예 공개적으로 ‘교체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언급을 하는 것도 시장의 혼란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서승욱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