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 리더십으로 용감하게 국가 위기를 이겨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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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 세계가 버티기에 들어갔다. 나라의 운명을 건 경제 전쟁이다. 우리도 험난한 항해를 피할 수 없다. 외환보유액 2400억 달러에 의지해 삼각파도를 뚫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정부가 외채를 보증하고 중앙은행이 증권사들에 2조원을 긴급 지원한 순간 같은 배를 타게 됐다. 어느 쪽 하나 구멍이 뚫리면 동반 침몰을 각오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두 진영으로 구분된다. 돈을 빌려준 나라와 빌린 나라가 그것이다. 불은 선진국에서 났지만 빌린 나라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가차없는 자금 회수로 국가부도를 선언한 이머징 국가가 수두룩하다. 한국은 순채권국과 순채무국 사이의 어중간한 경계지대다.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만 따지면 필리핀·인도네시아보다 위험하다고 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막힌 현실이다. 그러나 세계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한국은 국가부도에서 안전한가. 은행은 흔들리지 않는가. 부동산 시장은 괜찮은가…. 이제 우리는 살기 위해 이 냉혹한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우리는 출항에 앞서 내부 점검부터 필요하다. 항해를 이끄는 강만수(기획재정부 장관)·이성태(한국은행 총재)·전광우(금융위원장)의 경제 라인은 믿음직한가. 그동안의 엇박자나 불협화음은 꺼낼 필요도 없다. 전투 사령관인 강 장관은 국회에서 “좀 봐달라”며 자리 보전에 급급하다. 이런 인물이 과연 국가 CFO인가. 전 위원장은 또 어떤가. 그의 국제금융 경력은 사전 위기예측에 실패하면서 바닥을 드러냈다. 지금 금융시장에서 그는 식물인간 상태다. 한은 이 총재는 어떤가. 물가안정, 좋다. 중앙은행 독립성, 좋다. 하지만 나라 경제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지고지순한 가치인지 되묻고 싶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뇌사상태의 사령부로는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상한 각오로 경제팀을 다시 꾸려야 한다. 선거캠프의 공헌도 대신 철저히 능력 위주로 짜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의 신뢰’보다 ‘시장의 신뢰’가 유일한 잣대가 돼야 한다.

새로운 리더십 위에서 우리는 용감하게 경제위기와 맞서야 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과 실적이 중요하다. 첫째, 무엇보다 경상수지 흑자가 우선이다. 현재의 고환율에서 10월 무역수지는 확실하게 흑자로 돌려세워야 한다. 4분기는 물론, 내년 상반기까지 무역수지 흑자가 이어진다는 확실한 신호를 보내야 국제시장의 싸늘한 시선을 되돌릴 수 있다. 그래야 우리 내부의 신뢰와 자신감도 회복될 것이다.

둘째, 국회는 당장 은행 외채 지급보증 동의안부터 통과시켜야 한다. 지금은 정치적 주판알을 퉁길 때가 아니다. 미국의 실패를 보라. 정치권이 국민적 분노를 이용하려다 되레 경제혼란과 사회적 비용만 가중시키고 있다. 은행의 도덕적 해이는 이 위기를 넘긴 뒤 가혹한 회초리를 들어도 늦지 않다. 신속한 동의안 통과는 우리 CDS 프리미엄을 한결 낮추는 지름길이다.

셋째, 한은은 은행채 매입에 머뭇거릴 때가 아니라고 본다. 은행이 얄미워도 자금 숨통부터 틔워줘야 한다. 지금 은행 파산은 곧바로 국가부도를 의미한다. 펀드런을 막기 위해 증권사에 대한 긴급자금 지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은은 전 세계 중앙은행이 위기 진압의 최전선에 나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넷째, 대기업의 동참이 필요하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 일본 미쓰비시종합상사 등은 런던에서 거액의 달러화를 차입해 달러 가뭄에 시달리는 일본 은행들에 공급했다. 지금 한가하게 금산분리를 따질 때가 아니다. 국책은행까지 해외차입이 막힌 긴박한 상황이다. 아직 국제 신용라인이 살아있는 삼성전자·포스코·현대차·LG전자 등이 달러 유동성 확보에 앞장서 주길 기대한다.

노련한 선장과 항해사는 위기가 닥치면 필요없는 짐부터 바다에 던져 복원력을 회복한다. 그리고 최고 속력으로 몰아치는 삼각파도 중에서 가장 높은 파도를 정면으로 타고 넘어야 탈출에 성공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세계가 자욱한 먼지로 덮여 있다. 새로운 리더십으로 용감하게 정면으로 맞서야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