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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性논의,보다 진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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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제도가 위헌판결을 받은 이후 성(性)에 관한 논의가 부쩍 활발해졌다.그러나 사실은 이 일과 관계없이 이 문제에 관한 논의는 언제부턴가 점증(漸增)해 왔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아니,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성에 관한 모든 표현이 차츰 훨씬 직접적이며 구체적 양상을 띠어 왔다고 말하는편이 옳다.
이에 관한 나의 생각을 결론부터 밝힌다면 지극히 당연한 추세라고 일단 말해둬야 하겠다.왜냐하면 개방된 사회는 성의 개방을포함한 모든 면의 개방을 가져오게 마련인데 성의 개방은 언제나그중 앞장서는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성문 제는 사실 도덕적 선악이나 법적인 규제,혹은 종교적 금기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느 사회에 있어서나 보편적 인간관심사인데,그 까닭은 이 문제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이념과 무관한 근본적인 인간의 생명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논의는 이 본질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이뤄져야 하며,성문제라고 해서 지나치게 성적(性的)인 접근으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도덕적.법적.상업적 접근도 아울러 자제돼야 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외설물 제작혐의로 최근 출판사의 등록이 취소되고,시민단체가 출판사를 향해 책의 수거를 강권하는 일은 한국인 특유의 성급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돼 씁쓰름한 느낌이 남는다.
인간존재는 사회내 존재며,그런 한에 있어서는 온갖 도덕적.법적 규범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그 어떤 자유지향의 예술인이라 하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이치다.그러나 이보다먼저 선행돼야 할 인식은 그 인간존재의 개별적 위엄이며,독자적생명체로서의 권리다.가능한한 이 위엄과 권리는 덜 억압돼야 하며 그런 차원에서 도덕과 법을 행사하는한 사회와 국가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성문제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테두리에서 수용되고,또 연구돼야 한다.「연구」라는 말을 나는 썼는데,성문제는 노상 상업적인 강행과 도덕적 반발.규탄만 있어왔지 진지한 연구가 결핍돼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이제 저널리즘차원의 성급한 캠페 인이 지양되고,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동반될 때 문제의 핵심이 보다 확실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이 문제의 대가 프로이트를 낳은 오스트리아 빈에 가면 도서관마다,서점마다 『성의 도시-빈』하는책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성을 가려야 하는 어떤 것,은밀한 어떤 것으로만 바라보는 인식이 우리 사회 일각에 남아 있다면 이것은 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포기하고,재래의 관습에 안이하게 편승하고 있는 비문화적자세다.이 때문에 성은 곧 나쁜 것,더러운 것으 로 청소년 시절부터 뇌리에 못박히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끓는 욕망 때문에청소년들은 어쩔 수 없는 자기모멸과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도대체 그 엄청난 괴리를 어쩌란 말인가.생리현상에만 기능적으로 치우치는 성교육도 또 하나의 문제일 뿐이다.성은 생명을 개화시키며,인격의 수준을 높여가는데 작용할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하며,나아가 후세및 역사와도 관계되 는 중요한 총체적 생명현상이라는 사실이 제대로 교육되고 있는가.표현이 좀개방적이면,어쩔줄 모르고 가리기만 하려는 사회는 어른스럽지 않다.그것은 왜곡된 호기심만 키우는 거짓된 인간.사회.문화를 만들어낸다.
국가와 사회가 할 일이 있다면,억압 아닌 정리를 해주는 일이다.외설물-출판.연극.영화 등-들은 장소별.시간대별.성격별로 차별화해 수용자들로 하여금 선택에 따른 책임감을 심어줘 도덕감각.비용감각 등을 통한 통과의례의 자의식을 깨우쳐 주고,한 사회가 갖는 유기체적인 조직원리를 갖춰야 할 것이다.한 인간에게있어 생식기관과 배설기관의 중요성은 한 사회에 있어서도 똑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金柱演 〈숙명여대교수.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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