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노니 컴 게임 생각 안 나 … 희한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중학교 2학년 강정일(14·가명)군은 각종 질병을 앓고 있다. 눈에는 결막염, 귀에는 중이염과 이명 증세가 있다. 최근엔 충치도 늘었다.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진 지난 1년 동안 생긴 병이다. 강군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7~8시간씩 컴퓨터에 붙어 있었다. 게임 시간을 줄이려고 어머니가 컴퓨터를 방에서 거실로 옮겼다. 하지만 강군은 이어폰을 낀 채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 게임에 지면 책상을 맨손으로 내려치곤 했다 “게임 좀 그만하라”는 어머니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학교에선 수업시간에 잠을 잤다. 성적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다.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이 한국청소년상담원의 인터넷 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강군은 13일부터 11박12일 동안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진행된 ‘인터넷 레스큐 스쿨(인터넷 중독 치료 학교)’에 참가했다. 프로그램에는 인터넷 중독 증세가 심한 중학생 21명이 참여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80%에 가까운 개선 효과”=학생들은 매일 아침 그날 할 일의 목표를 정했다. 인터넷을 하느라 엉망으로 보내왔던 하루 계획을 직접 짜보도록 한 것이다. 일주일에 자신이 얼마 동안 인터넷을 했는지 시간표도 만들었다. 스스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분노 조절 강의를 듣거나 역할극을 하며 외롭거나 화가 났을 때 인터넷을 하지 않고도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프로그램 셋째 날부터 아이들은 승마와 도자기 빚기, 보드 타기 등의 활동을 했다. 둘째 날 밤까지만 해도 게임하는 잠꼬대를 했던 강군은 다섯째 날 진행된 야영에선 조장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텐트를 치며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렸다. 참가 학생들은 “게임보다 여기 프로그램이 훨씬 재밌다”고 말했다. “인터넷 게임은 다른 것을 할 게 없어서 했었다”고 덧붙였다. 강군도 “컴퓨터 생각이 전혀 안 나는 게 희한하다”고 말했다.

상담원 측은 ‘인터넷 좀 한다고 성적이 떨어지겠어’ 등 아이들이 인터넷에 대해 갖고 있는 낙관적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줬다. 프로그램 후반기에 학생들은 20대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 미래의 꿈을 정하고 직접 셀프카메라를 찍었다. 강군은 셀프카메라에서 “프로그램이 솔직히 힘들었지만 협동하면서 보람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스티븐 호킹에 감동받아 천문학자가 되고 싶고, 집에 돌아가면 컴퓨터 말고 다른 데 흥미를 붙이고 싶다”고도 했다. 강군은 방과 후 집에 오면 숙제부터 먼저 하고 게임은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하기로 어머니와 약속했다. 주영아 상담연수실장은 “아이들은 수련활동을 하며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끼고 집단상담 등을 통해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을 것”이라며 “특히 시간을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애썼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시작돼 이번이 다섯 번째다. 4회까지 수료한 63명 중 79%가 개선 효과를 봤고, 58%는 중독에서 거의 벗어났다고 상담원 측은 전했다. 캠프 운영을 총괄한 조규필 팀장은 “‘인터넷 게임 중독은 치료할 수 없다’는 속설에 비추면 대단한 성과”라며 “2주라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게임과 단절하고 대상이 중학생이란 점이 효과를 높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만 돼도 통제가 안 돼 치료 효과를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상담원 측은 이 같은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지만 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부모에게도 가정에서의 대처법을 가르친다. 인터넷 사용시간을 줄이되 공부를 강요하지 말 것과 대안 활동을 지원하라는 등의 내용이다.

상담원은 1년에 두세 차례 프로그램 참가 학생을 모집한다. 청소년상담원이나 각 지역 청소년지원센터에서 지원을 받는다. 청소년상담원은 검사를 거쳐 정도가 심한 학생 20명 내외를 선정한다. 참가비는 무료다.

천안=이충형 기자

◆한국청소년상담원=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 상담·복지 전문기관(www.kyci.or.kr). 심리학·사회복지학 등을 전공한 30여 명의 석사 이상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인터넷 중독 치료 외에도 저소득과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을 지역사회가 돕는 사업, 다문화가정 부모 교육, 자살예방 상담 프로그램 교육 사업 등을 펴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