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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어린이책] 장애인 형 … 남에겐 말 못 해, 말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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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빨 자국
조재도 지음, 실천문학사, 240쪽
9000원, 중학생 이상

 ‘만두빚어’반인 줄 알고 계발활동 시간에 ‘마인드비전’반을 선택했다. 그런데 첫 시간 교사는 “지금 자기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한다. 아니, 만두 만들어 먹는 게 아니었나. 중학교 2학년 승재는 흰구름과 먹구름을 그렸다. 정신지체 장애인인 형 승운과, 술만 마시면 “네가 우리집 기둥이다”“그렇게 공부할 거면 학교 때려치워라”라는 아버지. 이 두 사람이 승재에게 ‘먹구름’이다. 하지만 그림을 설명해보라는 교사의 말에 승재는 “시험을 잘 보면 마음이 흰 구름처럼 평화롭고, 잘못 보면 먹구름처럼 왕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다른 아이들 앞에서 집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승재에게는 ‘못 할 일’이고 ‘가슴이 바짝 오그라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빨 자국』은 현직 교사이자 시인인 작가 조재도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정신지체 장애인 형을 둔 작가의 가족사가 작품의 모티프가 됐다. 마인드비전반에서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은 계속됐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시간에는 아예 이야기를 지어냈다. “아홉 살 때 처음으로 도둑질을 했습니다. 학교 앞에 문구점이 있었는데 거기서 전화번호 수첩이랑 초콜릿을 훔쳐 …” 승재에게 형은 도둑질보다 부끄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승재는 행방불명된 형을 찾기 위한 전단지를 학교에 뿌리기로 결심하면서 비로소 열등감에서 벗어난다. 선생님 말마따나 어려운 문제도 한번 밖으로 공표하고 나니 별 것 아니었다. 상처가 극복되려면 ‘비밀’이라는 자물쇠부터 풀어야 한 것이다. 그렇게 승재는 한뼘 자란다.

결국은 승재의 성장기지만, 책이 전면에 내세우는 주제는 장애인의 소외 문제다. 말도 못하고 한쪽 몸을 쓰지 못하는 형. 밥을 먹을 때마다 입에 넣는 것만큼이나 흘리는 게 많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을 때면 형에겐 늘 따로 조그만 상에 밥을 차려준다.

장애인 카드를 만들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다. 의사는 “시설 쪽으로 보내 격리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한다. “이제 점점 나이를 먹게 되고 기운이 세지면 집에서도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이란 이유였다.

마을 행사 때의 풍경은 더 쓸쓸하다. 마을에 잔치가 있거나 명절 같은 때 외지에서 사람들이 온 자리에서 형은 술을 마셨다. 상 위에 있는 술을 형이 스스로 따라 마시고는 취해 쓰러졌다. 승재와 엄마는 그런 형을 떠메고 집으로 와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가족들은 여간한 일이 아니면 밖에 잘 나다니지 않게 됐다. 가더라도 형 몰래 살짝 빠져나갔다 왔다.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형이 사기꾼 여자에 의해 성추행범 누명을 썼을 때다. 말 못하는 형은 속수무책으로 누명을 썼다. 아버지의 매는 인정사정 없이 형의 몸에 떨어졌고, 마을 사람들의 눈길도 달라졌다. 결국 엄마는 형을 보낼 시설을 알아보고 다녔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새로운 결정’이다. “우리 승운이, 시설에 꼭 보내야 하나?”로 시작된 부모님의 대화는 “그려 그럼, 가더라도 올 겨울이나 지내구서 가도록 혀”로 마무리됐다. 승재 가족의 일상에는 새로울 것 없을 결정이다.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장애인과 더불어 살기란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결론은 열려있다. 실제 삶의 대부분 문제가 그렇듯 말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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